[ET단상]한국경제 구조 개편, 관광산업으로 시작하자

장수청 야놀자리서치 원장·미국 퍼듀대학교 교수.
장수청 야놀자리서치 원장·미국 퍼듀대학교 교수.

우리 경제는 막다른 골목에 서 있다. 지난해 초부터 시작된 무역수지 적자가 14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올해 누적 무역 적자는 지난해 적자 규모인 472억달러의 절반을 벌써 넘어선 상황이다. 올해 1월부터 경상수지 또한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해 활력을 잃어가는 내수시장과 국내 총생산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하면 지금은 심각한 경제 위기임이 분명하다.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한국 경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반도체 경기의 침체다.

반도체는 중요한 기반 산업이긴 하지만 경기 싸이클에 민감한 특성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지난 수년간 한국 경제는 반도체 산업의 성장으로 큰 혜택을 보았는데 글로벌 경기 침체가 다가오자 한국 경제 하락의 주범으로 몰리고 있다. 이처럼 한국 경제가 반도체 산업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제구조는 지속적인 위험 요인이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해리 마코위츠가 체계화한 포트폴리오 선택 이론은 투자의 안정성을 위해 소수의 자산에 집중 투자하는 대신 서로 다른 수익률 패턴을 가진 복수의 투자 자산을 합리적으로 조합할 것을 제안한다. 이를 국가 경제에 적용한다면 성격을 달리하는 산업 분야에 균형 있게 투자해 경제 성장을 안정적으로 이루어나가야 함을 의미한다. 한국 경제는 반도체 산업 이외에도 산업 다각화를 통해 글로벌 경제 위기에도 대처할 수 있는 경제구조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어떤 산업이 적합할까. 제조업과는 다른 성격을 지닌 서비스 산업이 주목할 만하다. 서비스 산업 내에서도 다양한 세부 분야가 존재한다. 새로운 기술 발전의 트렌드와 맞물려 우리 스스로가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분야를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다행히도 수년 전부터 K팝, K드라마, K음식 등의 문화 콘텐츠 산업이 전 세계적인 관심을 끌고 있다. 한국 관광산업의 글로벌 경쟁력도 상승하고 있다. 관광산업의 성장은 일자리 창출, 고용 증가, 지역경제 활성화뿐만 아니라 국가 이미지 제고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경제적 파급력을 넘어선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디지털 전환(DX) 시대가 글로벌 관광산업 환경에 큰 변화를 가져오는 상황에서 한국이 보유한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통신기술(ICT) 인프라 역시 우리에게 유리한 조건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주목할만한 점은 관광산업이 외화 소득을 올리는 수출산업의 역할도 수행한다는 사실이다. 넓게 보면 외국인이 한국을 방문하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의 관광 플랫폼 기업, 솔루션 기업과 같은 트래블 테크기업이 해외에 진출해 외국인이 사용하는 플랫폼을 만드는 것 역시 관광 수출의 일부분으로 포함시킬 수 있다. 관광산업을 발전시켜 국제 경쟁력을 갖춘 수출 산업의 한 분야로 육성하는 것이 효과적인 경제구조 개편 방안의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산업 발전이 단시간에 가능한 것이 아니므로 국가적 역량을 모아 인내심을 갖고 꾸준히 육성하려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의 다양한 지원책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관광 플랫폼 기업도 반도체 기업처럼 연구개발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으므로 반도체 기업에 적용하는 투자세액 공제와 같은 세제 지원이나 재정 지원을 고려해 볼 수 있다. 관광 해외수출 펀드 등을 조성해 해외진출에 소요되는 일부 자금을 충당해 주는 방법도 있다. 관광 사업자 스스로도 사업대상이 국내 관광객뿐 아니라 해외 관광객도 포함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상품과 서비스 기획 단계부터 글로벌 시장을 대상으로 한다는 마인드셋을 지녀야 한다.

‘물들어 올 때 노 저어라’는 말이 있다. 기회를 적절히 활용하면 원하는 결과를 효율적으로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K콘텐츠가 전 세계에 뻗어나가고 DX가 가져오는 새로운 관광산업의 기회가 우리에게 커다란 물결로 다가온 것을 인식해야 한다.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국가 차원의 전략적 투자와 지원이 필요하다. 관광 기업도 미래 성장을 위해 글로벌 마인드로 무장할 필요가 있다. 관광산업을 시작으로 다양한 서비스 산업 분야를 발전시켜 균형 잡힌 선진국형 산업 구조를 추구해 나간다면 세계적 경제 침체에도 성장과 안정을 이루어 낼 수 있는 경제 구조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장수청 야놀자리서치 원장·미국 퍼듀대학교 교수 soocheong.jang@yanolj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