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상반기 출시한 5대 주요 가전(냉장고·에어컨·세탁기·건조기·공기청정기) 가운데 에너지소비효율 1등급 제품 비중이 50% 이하로 떨어졌다. 한국에너지공단에 따르면 상반기 5대 주요 가전 1등급 제품 합산 비중은 46%다. 지난해 같은 기간 1등급 제품 비중은 52.9%였다.
정부 정책과 경기침체가 주요 하락 원인으로 꼽힌다. 정부는 2021년부터 주요 가전 에너지소비효율 1등급 기준을 꾸준히 강화했다. 기술이 발달하는 만큼 기준도 높였다. 고효율 가전 연구개발(R&D)을 위해서는 설비투자가 선행돼야 한다. 경기침체로 소비자가 지갑을 닫는 상황에서 자금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은 이를 감당할 여력이 부족하다. 효율이 떨어지더라도 저렴한 제품을 생산하고 소비자도 값싼 제품에 손이 가게된다.
지난 2020년 코로나19로 침체된 경기를 활성화하기 위해 정부는 '으뜸효율 가전제품 구매비용 환급사업'을 시행했다. 가정 내 에너지 소비가 많은 11개 품목을 정하고 이를 고효율 등급 제품을 구매하면 구매 비용의 10%(30만원 한도)를 환급해줬다. 추경을 통해 확보한 예산 3000억원은 제도 시행 5개월여 만에 모두 소진됐다. 10% 환급으로 따지면 3조원 이상의 소비진작 효과가 발생한 것이다.
이 기간 동안 가전업체 매출은 전년 대비 약 2.2배 증가했다. 11개 품목 가운데 5개가 중견·중소기업이 생산하는 품목이었다. 환급 신청 건수는 38.1%를 차지했다. 대형 가전에도 중소 협력사 제품이 들어간다. 조달 부품 비중은 금액 기준으로 약 60%로, 중소기업 매출 증대에도 큰 역할을 했다.
2021년부터는 한국전력공사 자체 예산으로 사업을 진행했다. 대상도 취약계층으로 축소됐다. 올해 예산은 139억2000만원이다. 상대적으로 소득이 낮은 가구에 전체 예산의 50% 이상을 책정했다. 환급 비율도 기존 10%에서 20%로 높였다. 하지만 아직까지 예산이 소진됐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예산을 줄이고 대상도 제한하면서 파급효과가 크지 않다.
해외에서도 에너지효율 전자제품 생산·소비 촉진을 위한 정책을 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160여개 에너지 리베이트 및 인센티브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에너지스타 인증'을 받은 냉장고의 경우 소득 수준에 따라 최대 200달러를 환급해준다. 독일은 지자체와 에너지 기업이 협력해 리베이트 제도를 운영한다. 헤르네의 경우 에너지효율 A~B등급 제품을 구매하면 30유로를 지원한다.
고효율 가전 구매 지원사업은 단지 복지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온실가스 배출 감축 노력의 일환으로 확대할 수 있다. 주요 선진국들은 에너지·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전자제품 에너지소비효율 요건을 강화하고 있다. 고효율 제품이 아니면 무역장벽을 넘을 수 없는 상황이 오고 있다. 기업은 관련 기술 개발이 필수조건이 됐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4%로 또 내렸다.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0.2%포인트 높인 것과 대조적이다. 경기침체를 벗어나기 위한 정책을 지속적으로 펼쳐야 한다. 으뜸효율 가전 구매 지원 정책 효과는 이미 증명됐고 정책을 시행해야 하는 이유도 충분하다. 제조·유통사에는 R&D와 생산, 공급을 위한 동인을 주고 소비자에는 지갑을 열 수 있는 동인을 준다. 일부 계층 지원이 아닌 전 국민을 대상으로 정책을 펼쳐야 효과는 극대화 된다.
김정희 기자 jhakim@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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