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그래도 다시 한번, 오프라인

지난해 2월 미국 오프라인 유통 서비스 스타트업 '베타(b8ta)'의 마지막 매장이 문을 닫았다. 팬데믹으로 인한 유동인구 감소가 결정적이었다고 한다. 베타는 체험 마케팅과 유통에서 해외는 물론 국내에서도 대표 혁신 사례로 꼽히는 기업이었다. 2015년 '오프라인 유통의 재창조'를 외치며 야심차게 등장한 베타는 제품이 아닌 고객 경험과 데이터를 판매하는 전략을 펼쳤다.

매장은 배치된 모든 제품을 만져보고 시연해볼 수 있게 설계됐다. '베타테스터(b8ta Tester)'라고 불리는 매장 직원은 고객에 제품 구매를 권하는 게 아니라 불편한 점이나 궁금한 내용을 물어 고객 의견을 듣고 입점 브랜드에 전달했다.

윤미나 세라젬 사업혁신본부장 상무
윤미나 세라젬 사업혁신본부장 상무

이 뿐만 아니라 인공지능(AI) 카메라로 고객 행동을 분석해 체험 횟수나 시간, 반응 등을 데이터화해 제공하고 판매수수료 대신 고정 임대료만 받는 정책으로 다수 기업을 유치할 수 있었다. 2019년까지만 해도 이 혁신 스타트업의 미래는 매우 밝아보였다. 미국에서만 20여개 매장을 열고 시리즈C까지 누적 7600만달러 투자를 유치했다.

하지만, 결국 오프라인이라는 태생적 한계가 발목을 잡았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한 매장은 하루 1000명에 달하던 주말 방문객이 사업 종료 시점엔 40명으로 90% 이상 줄었다. 매장에 즐비한 고가 제품이 수많은 무장 강도의 표적이 돼 보안 비용이 대폭 증가하는 일도 있었다.

국내 상황도 비슷하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올해 유통업체들의 오프라인 매출은 전년 대비 4.3% 줄어든 반면 온라인 매출은 7.2% 늘었다. 쿠팡의 상반기 연결 매출 실적이 처음으로 전통 오프라인 강자인 이마트를 넘어서기도 했다. 팬데믹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발판삼아 플랫폼 기업이 영향력을 늘린 사이 오프라인 매장 성장은 정체되고 있다.

뻔한 얘기겠지만 현재 위기를 돌파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오프라인 매장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발굴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고객 경험이 있다. 온라인을 통한 간접 체험으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고유한 경험 말이다.

최근 MZ세대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롯데의 와인 메가스토어 '보틀벙커'도 비결은 고객 경험에 있다. 이곳은 핵심 서비스 중 하나인 '테이스팅 탭'을 통해 고객이 80여 가지의 다양한 와인을 50ml 단위로 구매해 시음해볼 수 있다. 단순한 아이디어 같지만 다양한 종류의 와인을 자유롭게 경험해보고 싶어하는 고객 니즈를 제대로 캐치한 사례다. 시몬스는 침대없는 팝업스토어 '하드웨어 스토어'와 '그로서리 스토어'를 잇따라 열면서 많은 고객들에게 색다른 경험을 제공했다. 최근 쿠팡은 '메가뷰티쇼버추얼스토어'를 통해 처음으로 오프라인에서 고객들과 만났다.

오프라인 업계 종사자 중 한명으로서 한때 혁신이라 추앙하던 스타트업의 퇴장을 지켜보는 건 꽤나 씁쓸한 일이다. 어두워 보이는 게 오프라인 매장의 현실이지만 온라인으로는 충족할 수 없는 고객 경험이라는 가치가 유효하게 작동하는 한 아직 오프라인의 미래를 비관하는 건 조금 이른 것 같다. 늘 그랬듯 우리는 답을 찾을 테니까.

윤미나 세라젬 사업혁신본부장 minayun01@cerage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