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문화산업공정유통법, 이렇게는 안 된다

이승민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부교수
이승민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부교수

'문화산업공정유통법' 제정이 논란이다. 3월 문체위에서 대안이 통과됐는데, 학계와 산업계에서 지적한 법안의 문제점은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다. 여기에서는 몇 가지만 지적하려 한다.

첫째, 규제 필요성부터 의문이다. 경제 규제를 위해서는 실증적이고 면밀한 실태조사를 통해 시장 실패가 확인돼야 한다. 법안은 콘진원 '2021년 콘텐츠산업 10대 불공정행위 실태조사'를 근거로 하고 있다. 불공정행위를 10가지로 분류해 프리랜서들로부터 불공정행위 경험을 조사했다. 그 결과, 87%가 불공정행위를 경험했다고 한다.

그러나 규제 법안의 근거로 매우 불충분하다. 조사에서는 설문지에 불공정행위 유형을 열거하고 당한 적 있냐는 식으로 조사했다. 여기에는 작업 결과물에 대해 적절한 보상이 이루어졌는지를 묻는 항목들이 있다. 프리랜서 입장에서야 높은 대가를 받고, 한 번에 일을 끝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니 위 항목들을 보고 자신도 불공정한 일을 겪었다고 답변했을 것이다.

정말로 불공정했는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결과물을 확인해야 한다. 전수 조사는 못하더라도 일정 규모 이상의 표본을 확보해 해당 프리랜서들이 적절한 결과물을 만들었는 지를 확인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 프리랜서의 87%가 불공정행위를 '경험'했다는 점에 큰 의미를 둬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이런 실제적인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고, 기업 입장도 제대로 청취되지 않았다.

둘째, 불필요한 중복이다. '검정 고무신' 사건은 잘못된 저작권 계약에 의한 것이다. 이는 예술인권리보장법에서 이미 규율하고 있으며, 저작권법 개정도 논의 중이다. 게다가 법안에는 공정위와 방통위 소관 법률에 이미 존재하는 온갖 금지행위 규정들이 모여 있다.

특히, 공정거래법과의 중복은 심각한 수준이다. 문체부도 소관 법률인 문화산업진흥기본법, 콘텐츠산업진흥법, 음악산업진흥법, 출판문화산업진흥법, 만화진흥법, 대중문화예술발전법, 영화비디오법 등에 각종 불공정행위 금지조항을 이미 마련해 두고 있다. 그러므로 이중, 삼중으로 규제 법안을 만들 이유가 없다. 법안에서 중복제재는 금지하더라도 중복조사는 피할 길이 없다. 중복조사만으로도 이용자들은 불편하다.

셋째, 생태계를 파괴시킬 수 있다. 특히 '판촉·유통비용 전가 금지'의 경우가 그렇다. 기존 대규모유통업법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대규모유통업법에서는 판촉행사 요건·절차를 매우 엄격하게 정하고, 대규모유통업자가 50% 이상의 비용을 분담하도록 강제했다.

그러다 보니 모 백화점이 90% 가까이 판촉비용을 부담하고서도 필요한 절차를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공정위로부터 제재를 받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유통기업들은 코리아 세일 페스타와 같은 국가 차원의 판촉행사에도 불참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공정위는 부랴부랴 예외를 인정하는 가이드라인을 제정했다. 애초부터 함부로 규제하지 말았어야 할 대상에 대해 현실에 맞지 않는 규제를 하면 이런 촌극이 벌어진다.

웹툰의 처음 몇 회는 무료로 제공된다. 이는 소비자의 선택을 위한 중요한 장치로서 웹툰 작가와 유통 플랫폼 모두가 윈윈하기 위한 수단이다. 그런데 이것을 플랫폼의 갑질로 보고 무료 제공 부분에 대해 비용을 지급하도록 규제하면 플랫폼 입장에서는 무료 미리보기 기능을 폐지할 수밖에 없다. 결국 플랫폼이 선택한 콘텐츠만이 유통될 것이다. 신진 작가들의 등장은 어려워지며, 다양한 콘텐츠에 대한 소비자의 선택권은 줄어든다. 역설적으로 플랫폼의 지위는 더 강화될 것이고, 산업은 위축돼 창작자를 비롯한 모두의 불이익으로 귀결될 것이다.

이승민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부교수 seungminlee@skku.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