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 너무 늦었지만 꼭 통과돼야 할 '구하라법'

“어린 시절 친모에게 버림받고 평생을 외로움과 그리움으로 고통받았던 하라 양의 비극이 우리 사회에서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하라 양의 이름이 우리 사회를 보다 보편적 정의와 인륜에 부합하는 곳으로 바꿀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입법청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2020년 3월 18일 '구하라법' 제정을 위한 입법 청원이 시작됐다. 이후 4월 3일 오전 10만명 동의를 얻어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됐다.

천안함 피격사건, 세월호 참사, 경주마우나리조트 체육관 붕괴사고 등 재난재해 사고에서 양육에 기여하지 않은 친부모가 보험금을 달라며 소송을 제기하거나 재산의 상속을 주장하는 등 국민 정서상 상속을 납득할 수 없는 경우를 해결하고자 민법 개정(안)을 2019년 11월 14일 대표 발의했다.

안타깝게도 10일 후인 11월 24일 가수 구하라 씨가 세상을 떠났다. 20년간 연락이 닿지 않았던 친모가 구하라 씨 빈소로 찾아와 유산 상속을 요구했고, 이에 친오빠가 입법 청원을 하면서 '구하라 법'이라 명하게 됐다.

현행 법에 따르면 자녀에 대한 양육의무를 오랫동안 다하지 못한 부모가 있다 하더라도, 자녀가 사고 등으로 부모보다 먼저 사망할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사망보상금을 비롯한 자녀의 재산은 그 자녀를 버린 부모에게 상속된다. 이는 자녀양육에 대한 의무는 다하지 않으면서도 자녀의 안타까운 사망으로 인한 재산적 이득을 그 부모가 취하게 된다는 점에서 보편적 정의와 인륜에 반한다.

그럼에도 20대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했고, 21대 국회 1호 법안으로 다시 대표 발의해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구하라법이 통과되지 못하는 사이, 제2·제3의 구하라 사건이 발생했다.

먼저 '전북판 구하라' 사건이다. 소방관 강한얼씨가 순직하자 32년 만에 나타난 친모가 유족급여를 받아가려 해 많은 국민들의 분노를 샀다. 친모는 상속권이 인정돼 유족급여 등 1억 여원을 받았고, 이에 강한얼 씨의 부와 언니가 양육비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법원은 “부모의 자녀 양육의무는 자녀의 출생과 동시에 발생하고, 양육비도 공동책임”이라며 “친모는 친부에게 양육비 77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유족급여와 별개로 친모가 사망할 때까지 매달 91만원의 유족연금을 받게 됐다. 이에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에 강한얼 씨의 친언니 강화현씨를 참고인으로 출석시켜 그 부당함을 알렸고, 대표 발의한 '공무원 구하라법(공무원연금법·공무원재해보상법 개정안)'이 여야 행안위 의원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21년 6월 시행된 공무원 구하라법에 따라 양육하지 않은 부모의 순직유족급여 제한 결정이 2건 있었다. 공무원 재해보상심의위원회에서 양육하지 않은 기간, 정도 등을 고려해 1건은 양육하지 않은 부모에게 15%, 1건은 양육하지 않은 부모에게 0%로 결정돼 지급이 제한됐다.

보험금을 타기 위해 54년만에 나타난 친모도 있었다. 2021년 1월 거제 앞바다에서 어선을 타다 폭풍우를 만나 실종된 선원 김종안씨는 아직 시신조차 찾지 못하고 있다. 결국 사망이 인정된 김 씨 앞으로 보험금 2억 3000여만 원과 선박 회사의 합의금 5000만 원을 더해 모두 3억 원 정도 보상금이 나왔다.

이 소식을 듣고 김 씨가 두 살 때 집을 나갔던 친모가 보험금을 가져가겠다고 54년만에 나타났다. 친모는 김 씨 누나인 김종선 씨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현행법상 보험금 수급권은 친모에게 우선권이 있어 1심, 2심 판결 모두 친모에게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이 난 상황이다.

친모는 1심 과정에서 아들 앞으로 되어있는 집과 통장도 자신의 명의로 바꿔놓았고, 2심 재판부가 사망보험금 중 1억원을 친누나에게 지급하라는 화해 권고 결정을 한푼도 줄 수 없다며 거절했다. 누나 김종선씨는 대법원에 상고한 상황이다.

다행히, 지난 11월 8일 부모가 양육책임을 이행하지 않은 경우 선원 자녀의 유족급여, 행방불명급여 등 보험금 지급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제한할 수 있도록 하는 '선원구하라법(선원법, 어선원 및 어선재해보험법 개정안)'이 국회 농해수위를 통과해 법사위와 본회의만을 남겨두고 있다.

이제 '구하라법'이 통과돼야 할 차례다. 아이를 양육하지 않은 부모는 상속자격이 없음을 명확히 해야 한다. 양육하지 않는 것은 아동학대에 해당한다. 구하라 양과 유족이 겪었던 고통을 또 다른 미성년자와 그 가족이 겪지 않도록 '구하라법(민법 개정안)'이 꼭 통과돼야 한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민법의 상속 관련 규정은 상식을 대변하지 못하고 정의와 인륜에 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법무부를 비롯 여야 국회의원이 발의한 민법 개정안 11건이 국회 법사위 법안소위에서 심도깊게 논의 중에 있다.

“자녀를 키우는 입장에서 양육은 아이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다. 부모의 손이 필요한 어린 시기에 아이를 버리고 뻔뻔하게 나타나 재산을 요구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 아이를 키운 보호자가 사망한 자녀의 재산을 상속하는 게 맞다”고 국민들은 얘기하고 있다.

하루 빨리 법사위에서 '구하라법'이 통과되도록 대표 발의 의원으로서 더욱 노력할 것을 다짐해본다. 국민 여러분의 응원과 관심이 더욱 절실한 때이다.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youngkyos@naver.com

〈필자〉 경북 상주 출신으로, 초·중·고교를 지역구인 서울 중랑구에서 다녔다. 이화여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정치외교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공공정책학 석사와 동아시아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3선 국회의원인 서 의원은 현재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직도 맡고 있다. 현재는 기획재정위원회 소속으로, 직전까지는 행정안전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국회 내 대표 연구단체인 소상공인정책포럼 대표의원직과 한국-캐나다 의원친선협회 회장, 민주당 민영화저지·공공성강화 대책위원회 위원장직을 맡고 있는 등 소상공인 정책에서 의원 외교 분야까지 민생을 비롯한 국익을 위해 다양한 분야에서 의정활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