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호국신산(護國神山)'은 아니라도

김종욱 한국전기연구원 수석연구위원
김종욱 한국전기연구원 수석연구위원

최근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미국 국제무역위원회(USITC) 통계자료를 활용해 국가경쟁력 분석자료에 냈다. 이에 따르면 반도체, 디스플레이, 이차전지, 미래차, 바이오, 로봇 등 미래를 좌우할 6대 첨단산업에서 우리나라 국가경쟁력이 갈수록 퇴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총은 6대 첨단산업별 수출시장 점유율을 분석해 글로벌 제조 강국인 미국, 중국, 일본, 독일, 대만과 비교해 국가별 순위를 도출했다. 그 결과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우리나라 6대 첨단산업 수출시장 점유율은 8.4%에서 6.5%로 급격히 떨어졌고 종합 순위는 2위에서 5위로 추락했다. 반면에 중국은 부동의 1위를 고수했고 독일과 대만, 미국이 차례로 순위를 끌어올렸다.

특히 우리 주력산업인 반도체의 경우 수출시장 점유율이 13%(2018년)에서 9.4%(2022년)로 무려 32.5% 하락했고, 11.2%(2018년)에서 15.4%(2022년)로 증가한 대만에 2위 자리를 내주며 3위로 내려 앉았다. 대만이 국가경쟁력 종합순위 3위에 오른 주 요인은 TSMC가 보유한 반도체산업 초격차 기술 때문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인공지능(AI), 양자컴퓨팅, 바이오, 자율차, 하이퍼루프, 6G 등 미래 핵심기술 64개 분야 국가경쟁력을 분석한 호주 전략연구소(ASPI)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전년 대비 2단계 하락해 14위에 그쳤고, 단 한 분야도 1위를 차지하지 못했다.

ASPI 보고서는 우리나라가 연구개발(9위), 제조(10위), 적용(13위) 분야는 상위권이지만 규제(28위), 전략(29위) 등에서 하위권을 면치 못해 전체 순위가 하락한 것으로 분석했다. 우리나라 국가경쟁력을 끌어올리려면 규제 철폐, 혁신 전략 등 정책 측면에서 드러난 약점을 시급히 보완해야 한다는 사실을 드러낸 결과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우리나라가 이러한 미·중 패권 경쟁, 동시다발적 지정학적 리스크 등 글로벌 다중위기의 한복판에 서 있다는 점이다. '사면초가'에 내몰린 '고립무원' 형국이다.

글로벌 다중위기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미래 첨단산업 분야에서 초격차 기술 역량 확보가 필수다. 다행히 우리나라 반도체와 이차전지 산업은 역량만 결집한다면 초격차 기술 확보가 가능한 경쟁력 있는 분야다.

정부와 관련 기업이 오는 2047년까지 622조원을 투입해 경기 남부 일대에 세계 최대 규모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를 조성하기로 한 것도 이 같은 이유다. 팹리스, 파운드리 등 반도체산업 전반에 걸친 생태계를 구축해 2나노 이하 시스템반도체와 고대역폭메모리(HBM)를 개발하고 반도체 초격차 역량을 확보한다는 청사진이다.

대만 TSMC는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기업으로 애플, 엔비디아, 퀄컴 등 내로라하는 글로벌 IT기업에 반도체를 공급한다. 세계 파운드리 시장의 약 60%를 점유하고 있다. 대만 국민은 TSMC를 중국과의 갈등에 맞서 대만 안보와 자존심을 수호하는 '호국신산(護國神山)'으로 여긴다. TSMC가 보유한 첨단 반도체 기술을 중국의 침략으로부터 대만을 보호하는 '실리콘 방패(Silicon Shield)'에 비유할 정도다.

우리나라 경쟁력이 쇠락하는 데는 미·중 패권 경쟁으로 인한 공급망 붕괴, 지나친 중국 일변도의 수출 의존도 등 다양한 요인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철옹성 같은 법과 제도의 숨막히는 규제, 일부 정치권과 단체에서 보이는 반기업 정서 등 내부적 요인이 더 큰 원인이다.

TSMC를 '호국신산'으로 여기는 대만 만큼은 아니라도 우리 기업이 세계에서 맘껏 경쟁할 수 있도록 무거운 족쇄는 풀어줘야 한다.

김종욱 한국전기연구원 수석연구위원 jukim@ker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