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플랫폼법으로 무너진 대통령의 약속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8월 3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스타트업 코리아 전략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8월 3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스타트업 코리아 전략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금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우리 시장과 세계 시장을 싱글마켓으로 단일화시켜 나가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불필요한 규제들을 제거해 나가면서 국제기준과 표준에 맞게 한국을 바꿔나가야 한다.”

지난해 8월 30일, '스타트업 코리아 전략회의'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이다. 스타트업 육성을 위해 규제를 과감히 철폐하고, 국내는 물론 해외 기업도 자유롭게 창업하고 혁신을 도모할 수 있는 단일시장을 만들겠다는 말이다. 이 발언은 우리 스타트업들이 국내 시장에 안주하지 말고 세계 시장에 진출하라고 독려하는 차원에서 나왔다. 그러기 위해 국제기준과 표준에 맞는 시장을 만들겠다는 약속이다.

회의에 참석한 스타트업 관계자들은 이 발언을 들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번에도 규제개혁은 말로만 떠들고 말겠지'라는 의심 혹은 '이번 정부도 스타트업 육성에 관심은 있구나'하는 안도감이 교차하는 정도였을 것이다.

그런데 5개월여가 흐른 지금, 윤 대통령의 발언은 '실속 없는 빈말' 허언(虛言)으로 귀결될 판이다. '규제를 제거하겠다'는 말부터 그렇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플랫폼 독과점의 폐해를 언급하더니 급기야 12월에는 '플랫폼공정경쟁촉진법' 입법에 속도를 내라고 주문했다.

문제는 규제의 정합성을 위한 부처 간 협력은 주문했지만, 당사자인 플랫폼 업계와의 소통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은 점이다. 시장 지배적 플랫폼 사업자를 지정하고, 강력한 사전 규제를 한다는 플랫폼법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다. 또 오해가 있으면 풀면 되는데, 주무부처인 공정거래위원회는 적극적으로 업계와 소통하지 않았다. 법안을 꽁꽁 숨긴 채 오해하지 말라고만 강요했다.

산업계의 불만은 플랫폼법 자체가 우리 플랫폼 생태계 육성과 전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스타트업을 거쳐 플랫폼 기업을 지향하는 창업과 혁신 의지가 꺾일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시장은 이미 반응하고 있다. 올해 투자 계획을 세우지 못한 벤처캐피털이 부지기수라는 얘기도 들린다. 투자가 메마르니 스타트업 생태계는 활발한 창업과 해외 진출은 고사하고 생태계가 무너질 것이라는 공포와 우려에 휩싸여 있다. 규제를 제거하겠다는 약속은 온데간데 없고, 새로운 규제를 만들어 시장을 옥죄는 셈이다.

'국제기준과 표준에 맞는 시장을 만들겠다'는 약속도 마찬가지다. 이미 미국 상공회의소는 플랫폼법에 대한 우려와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또 지난달 31일 열린 제8차 한미고위급경제협의회(SED)에서도 플랫폼법이 주요 안건으로 논의됐다. 미국은 국회서 논의되던 플랫폼 규제 법안을 모두 폐기한 바 있다. 사실상 글로벌 플랫폼 표준을 주도하는 미국조차 반대하는 법안을 만들어 어떻게 국제기준에 맞는 시장을 표방한다는 말인가.

윤 대통령은 스타트업 전략회의에서 “정부 주도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민간시장 중심으로 과감히 바꿔나가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취임 이후 지속적으로 천명해 온 민간 중심 정책 기조가 플랫폼법으로 무너질 위기다. 모두가 아니라고 하면 잠시 멈추거나 방향을 선회하는 것도 방법이다. 아니면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숙의라도 해야 한다.

양종석 플랫폼유통부 데스크 jsy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