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160년 전 런던에서 얻은 교훈

미국 공학 아카데미가 발표한 20세기 최고의 공학적 업적 20가지 중 눈길을 끄는 것이 있다. 많은 사람이 매일 접하지만 정작 잘 모르는 상하수도 시스템 개발이 4위에 올랐다.

160년 전 영국 런던에서 태동한 이 혁신은 산업혁명의 중심지로 부상한 런던이 직면한 치명적 문제에 실마리를 제공한다. 당시 런던은 급격한 인구와 도시화에 따른 공장 증가로 하천 수질오염이 심각했다. 과거에 경험하지 못한 여러 문제가 발생했는 데, 그 중 심각한 위생 분야 문제가 페스트였다. 도시화는 페스트와 같은 전염병의 창궐로 이어졌다.

하지만, 이 심각한 위기는 당시 의술이 아닌 상하수도 시스템 개발이라는 혁신으로 극복할 수 있었다.

20세기 최고의 공학적 업적 20가지 (자료=미국공학한림원)
20세기 최고의 공학적 업적 20가지 (자료=미국공학한림원)

당시 런던 시민의 식수원이었던 하천은 공장과 가정에서 배출되는 하수 때문에 심각한 수인성 질병의 진원지였다. 하천 대부분이 가정에서 사용하는 상수도의 주요 수원인데, 이런 하천에 하수가 유입돼 수인성 질병을 유발하는 세균 농도가 급격하게 증가해 심각한 수인성 질병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도시에서 배출된 하수가 직접 하천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을 원천적으로 방지하는 상하수도 시스템의 개발은 이러한 문제에 거의 유일한 대안이 됐다.

이처럼 제1차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변곡점이 인류에게 위생 문제라는 커다란 숙제를 던진 것처럼 오늘날 우리에게 유사한 위험이 다가오고 있다.

영국 템스강에서 노를 젓고 있는 죽음의 신 만평 (자료=펀치(Punch)지, 1858년)
영국 템스강에서 노를 젓고 있는 죽음의 신 만평 (자료=펀치(Punch)지, 1858년)

최근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제6차 평가보고서에서는 2030년 이전에 지구 온도가 '돌이킬 수 없는 지점'이라는 '1.5도 상승의 티핑포인트'에 도달할 가능성이 40~60%로 분석됐다.

지구의 체온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어떤 해열제도 듣지 않는 치명적 상황이 도래하게 된다. 과거 산업혁명 시대에 공장 연기와 폐수가 해당 도시를 위협했던 것과는 달리, 현재의 기후변화가 야기할 위협의 범위와 파급 효과는 상상을 초월한다.

이 시점에서 역사를 복기할 필요가 있다. 초기 산업화가 촉발한 급격한 인구증가는 도시 자정능력을 넘어 새로운 위생 문제를 만들어냈다. 산업화의 누적된 결과로 인한 급격한 이산화탄소 증가는 지구 전체의 자정능력을 넘어서고 있다. 이로 인해 지구 생태계 변화로 이어질 것이 자명하며 인류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미생물과 세균에 대한 노출로 이어질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지난해 8월 1일 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지구 온도가 1℃ 상승할 때마다 감염병 발생률이 4.7% 정도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기후변화가 인류의 질병 감염에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을 경고하는 중요한 지표다.

또 세계적인 바이러스 감염병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원인을 인간의 무분별한 활동 영역 확장에 따른 생태계 질서 파괴로 꼽기도 했다.

이미 IPCC는 2007년부터 지구온난화로 곤충, 설치류 등을 통한 감염병 확산 가능성을 경고해왔다. 세계보건기구(WHO) 보고에 따르면, 최근 20년간 인간에게 발생한 신종 감염병의 약 60%가 인수공통감염병이다. 이 중 75%는 야생동물로부터 유래했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 기후와 기상 분야에서 목격되는 긍정적인 발전은 우리에게 희망의 빛을 제시하고 있다. 기후와 기상의 측정, 모니터링, 시뮬레이션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예측과 예보의 정확도가 크게 향상됐다.

이러한 발전은 우리가 기후변화와 그에 따른 생태계 변화를 더욱 정확하게 예측하고 대응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고 있다.

사모아 인공위성 GIS 기반 삼림 조사 현황 이미지 (자료=국가녹색기술연구소)
사모아 인공위성 GIS 기반 삼림 조사 현황 이미지 (자료=국가녹색기술연구소)

생태계 관리 분야에서도 지리정보시스템(GIS)을 활용한 생태계 관리 시스템의 첨단화가 점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우리는 기상과 기후의 변화에 연동된 생태계 변화를 예측하고 이에 대한 선제 대응 시나리오를 수립할 수 있게 됐다.

또 이는 기후변화 시대에 맞는 새로운 위생 전략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과거 런던의 페스트 문제를 미생물학자와 상하수도 공학자들의 협력으로 해결한 것처럼 현재 우리가 직면한 기후변화 문제 역시 다양한 과학·기술 분야 협력으로 해결할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는 과거보다 다양하고 광범위한 요인이 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요인을 고려한 선제적 대응 방안이 필요하다.

이제 우리는 이를 '기후변화 신위생 공학(Climate Change New Sanitary Engineering)'이라고 정의하고, 대한민국이 이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탐색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기술적 진보를 넘어서 우리 사회와 환경에 대한 책임감 있는 접근을 필요로 한다.

탄소 감축과 기후 적응을 위한 노력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 분야에서의 혁신은 미래 위협에 대비하는데 중요한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이상협 국가녹색기술연구소장
이상협 국가녹색기술연구소장

이상협 국가녹색기술연구소장

〈필자〉 국가녹색기술연구소(NIGT)를 이끄는 소장으로서 데이터에 기반한 탄소중립 기술을 선별하고 국제협력 연계를 활성화하는 전략수립 기관으로 성장하는데 힘쓰고 있다. 이 소장은 현재 과기정통부 기후·환경연구개발사업 추진위원회 위원, 서울시 은평구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고려대 재료공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에서 환경공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004년부터 한국과학기술연구원에서 근무하며 기후환경연구소 물자원순환연구단장을 거쳐 한국연구재단 국책연구본부 에너지환경기술단장을 역임했다.152편 논문과 122건 특허를 보유했다. 환경부 장관 표장 2회, 환경기술 우수상, 미래창조과학부 국가연구개발 우수성과 100선,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기후정책유공자 표창, 환경산업기술원 20주년 우수기술 50선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