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챗GPT가 인공지능(AI) 열풍을 이끌었지만, 더 빠른 속도로 이용자가 증가하고 있는 것은 중국의 이커머스 쇼핑몰이다. 중국 업체들은 해외 진출을 위해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쉬인을 만들었다. '알·테·쉬'라 불리는 중국 이커머스 삼각편대는 시장가치 200조원의 모회사 자본력과 기술력을 지원받아 전 세계 유통을 뒤흔들고 있다. 외신에 따르면 '알·테·쉬'의 작년 광고비만 40억달러(5조3900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천문학적 광고비와 글로벌 배송까지 무료로 제공하며 시장을 확대하는 목적으로 전 세계 소비자의 이커머스 데이터 확보가 유력하다. 데이터 확보에 따른 경쟁우위는 사업자, 기업, 정부 관점으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사업자는 데이터 우위를 확보하면 AI 주도권도 자연스레 갖게 된다. 초기에 서비스를 활성화해서 경쟁사가 보유하지 못한 데이터를 확보하고, 데이터 우위를 활용해서 AI 성능을 강화함으로써 서비스를 고도화하는 선순환 고리를 완성하면 '데이터 자연독점'을 달성할 수 있다. 오픈AI가 AI 채팅 데이터를 압도하며 구글을 계속 앞서가는 이유 중 하나다.
기업 관점에서 글로벌 이커머스 데이터에 관한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 무역데이터의 경우 1만1000개의 HS코드로 구분되는데, 카테고리 수준으로 수천만개 이상의 아이템 상세 정보는 얻기 어렵다. 그렇지만 이커머스 데이터가 제공하는 아이템별 고해상도 상품코드를 활용하면, 제품별 글로벌 트렌드를 예측하고, 구매조달계획을 세밀하게 수립할 수 있다. 고해상도 제품 데이터를 기반으로 경영전략도 세울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이커머스 쇼핑몰만 문제가 아니라 전체 산업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의미다.
정부 입장에선 이커머스 데이터는 무역경쟁력의 핵심 자산이다. 글로벌 이커머스에선 소비자(수입)와 셀러(수출) 간 개인·기업정보, 구매·판매기록, 물품정보, 운송정보, 결제정보가 생성된다. 데이터를 분석하면 누가 어떤 물품을 얼마에 언제 수출하고 수입했는지를 상세히 알 수 있다. 전쟁에서 적의 병력, 무기보유·배치 현황, 이동경로를 현미경으로 실시간 지켜보는 셈이다. 무역전쟁이 격화되는 작금의 상황에서 이커머스 데이터는 주목할 전략 자산이다. 물론 쇼핑몰들은 데이터 유출이 괜한 걱정이라 하고, 정부에 제공됐다는 증거도 아직 없다.
하지만 데이터 안보를 우려하는 국가는 쉽게 찾을 수 있다. 일본은 9000만명이 이용하는 '라인' 지분의 절반 소유한 네이버에 매각을 압박하기 시작했고, 미국은 AI와 반도체 기술 안보에 이어 데이터 안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 하원은 올해 3월 13일 틱톡 '강제매각법'을 압도적 지지로 통과시켰다. 미국에서 1억7000만명, 700만개 이상의 중소기업이 사용하는 틱톡을 금지하면 이커머스 시장에 큰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파이낸셜타임즈에 따르면 워싱턴에선 중국의 바이트댄스가 틱톡을 소유하고 있으면 미국 국가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한다. 미국은 중국 정부가 틱톡에 사용자 데이터 이관을 강제화하고, 허위 정보를 더하여 미국 선거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우리나라도 알·테·쉬의 여파가 거세다. 올해 2월 국내 이커머스 점유율 2위와 4위를 알리와 테무가 차지했다. 1398만 소비자가 초저가의 알·테·쉬로 몰리면서 토종 유통플랫폼과 개인쇼핑몰은 치열한 생존경쟁에 직면했다. 정부도 태스크포스(TF)를 발족하고 공정거래위원회는 국내고객센터를 의무화했다. 하지만 데이터 안보 대책은 보이지 않는다. 해외 이커머스 업체의 한국 진출을 막을 수는 없지만, 데이터는 보호해야 한다. 정부가 통제하는 중립적 기관인 국가전자무역기반사업자를 통해 무역데이터 안보와 민간의 효율성을 동시에 확보하는 방법도 있다.
스마트폰 시대 경쟁자였던 애플과 구글이 데이터 확보를 위해 오월동주(吳越同舟)를 추진 중이다. 미국 정부는 이커머스 데이터를 국가안보 대상으로 인식하고 강력히 대응하고 있다. 우리에게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아 보인다.
최학열 한국무역정보통신 실장·연세대 인공지능융합대학 겸임교수 choe@kt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