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우리는 인공지능(AI)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다양한 플랫폼 기업들이 이용자 취향에 맞는 정보와 콘텐츠를 알아서 제공하는 시대다. 기계학습을 통해 이용자가 선호하는 알고리즘을 만들고 이용자 데이터를 바탕으로 상품 판매나 광고를 연결한다. 쟁점은 우리 삶과 일상생활이 해외 플랫폼 서비스로 채워질 뿐만 아니라 그 의존도가 높아져 간다는 점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상품 거래, 동영상 콘텐츠,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생성형 AI 서비스 등은 이미 미국과 중국 글로벌 플랫폼 기업들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이들 서비스는 이미 우리 일상의 시·공간을 채우고 있다.
우리는 해외 시장에서 높게 평가받는 한류 콘텐츠가 있지만 그 산업의 성장은 플랫폼 산업 발전과 궤를 같이한다. 우리 플랫폼이 더 많은 글로벌 이용자를 확보해야 창의적이고 매력적인 한류 콘텐츠를 지속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다. 그렇지 않으면 국내 시장에만 안주하는 우물 안 개구리 신세를 면하기 어렵다. 가령 국내 OTT 플랫폼이 글로벌 플랫폼에 비해 해외 시장 진출에 어려움을 겪는 동시에 국내 이용자가 정체되면서 과감한 콘텐츠 투자가 이루어지지 못하는 상황이 대표 사례다.
국내 플랫폼과 콘텐츠 기업이 살 수 있는 길은 글로벌 시장 개척이다. 가능성이 엿보였던 적도 있었다. 2000년대 초반 동영상 콘텐츠 검색 시장에 뛰어든 혜성 같은 기업, 판도라TV 사례다. 이 기업은 세계 시장에 통할 만한 기술력과 서비스 능력이 있었다. 유튜브보다도 먼저 국내외 동영상 콘텐츠 유통 시장을 개척했다. 화질이나 인터페이스 구성도 우위에 있었다. 과감한 투자와 기업 전략의 정교함, 콘텐츠 확보만 이루어졌다면 유튜브를 넘어설 만한 잠재력이 충분해 보였다.
그러나 당시 만들어진 규제들이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시장을 위축시킨 계기가 된 점은 아쉽기만 하다. 가령, 저작권법상의 삼진아웃제와 정보통신망법상의 인터넷 실명제 등이다. 불법 복제물 차단이나 인터넷 실명제와 같은 본인확인제는 규제 타당성에도 해외에 서버를 두고 있는 글로벌 플랫폼 기업에 적용되기는 어려웠다. 게다가 그들은 규제를 따르지도 않았다. 망 사용료 쟁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결과적으로 국내 사업자들에게만 규제가 적용되는 역차별이 생겨났다. 이용자 대부분은 규제가 없거나 편의성이 높은 글로벌 플랫폼 서비스로 갈아타기 시작했다. 판도라TV는 2023년 서비스를 종료했다.
판도라TV와 같은 국내 기업들은 기술적인 우위를 확보하면서도 역차별의 파도를 넘지 못했다. 반면에 콘텐츠 다양성이나 품질 측면에서 한국 플랫폼보다 열위에 있었던 글로벌 기업들은 국내 규제가 적용되지 않는 이점을 활용해 이용자들을 끌어모으게 되었다. 이들은 혁신적인 기술력을 바탕으로 과감한 콘텐츠 투자, 막대한 클라우드 비용 등을 감당하면서 시장 지배적 사업자로 성장해 왔다.
OTT 비중이 높아지면서 이들 시장에서도 글로벌 기업이 시장을 장악하는 추세다. 국내 콘텐츠 기업들은 막대한 제작비와 글로벌 유통 창구를 보유한 글로벌 플랫폼 의존이 심화하고 있다. 플랫폼 산업에서는 국내 사업자에게만 적용되는 규제들이 법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결과는 자명해 보인다. 글로벌 플랫폼 기업들이 다른 나라에서와 마찬가지로 국내 시장을 장악하고 지배하는 시점이 더 빨라질 것이다. 국내 콘텐츠 기업들 역시 그들에게 종속될 가능성도 더 커지게 될 것이다.
의도하지 않았던 규제로 주저앉게 된 판도라TV와 같은 사례는 반복돼서는 안 된다. 불필요하거나 타당성이 낮은 규제로 시장 혁신과 성장을 제약한다면 국내 디지털 플랫폼과 콘텐츠 시장은 글로벌 기업들의 전유물이 될지도 모른다. 비효율적 규제보다는 국내 기업들이 해외 시장 진출을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입증받을 수 있도록 과감한 진흥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전범수 한양대 정보사회미디어학과 교수 ccblade2@han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