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담회]“韓 AI정부, 기술 전문성부터 거버넌스까지 총체적 고려해야”

디지털정부혁신 좌담회가 30일 서울 종로구 버텍스코리아에서 열렸다. 왼쪽부터 김지선 전자신문 SW산업부 차장, 송석현 국립경국대 교수(한국디지털정부학회 학회장), 강동석 한국디지털정부협회 초대 회장, 문명재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권헌영 고려대 교수(디지털정부혁신위원회 위원장).  이동근기자 foto@etnews.com
디지털정부혁신 좌담회가 30일 서울 종로구 버텍스코리아에서 열렸다. 왼쪽부터 김지선 전자신문 SW산업부 차장, 송석현 국립경국대 교수(한국디지털정부학회 학회장), 강동석 한국디지털정부협회 초대 회장, 문명재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권헌영 고려대 교수(디지털정부혁신위원회 위원장). 이동근기자 foto@etnews.com

글로벌 인공지능(AI) 패권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정부 역시 AI 전환(AX)을 통한 AI 정부로 전환을 준비한다.

우리나라는 2000년대 초반 전자정부를 시작으로 최근 디지털정부에 이르기까지 정부 디지털 분야에서 대내외적으로 최고 수준 평가를 받는다. 이제는 AI 정부로 전환을 모색 중이다. 우리나라 디지털 정부가 AI 정부로 거듭나면, 개인화된 AI 대국민 서비스를 제공하고 공무원이 본연 업무에 집중하는 등 사회 전반 혁신이 일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AI 시대에 들어서면서 새로운 과제에도 직면했다. 빠르게 발전하는 AI 기술에 발 맞추기 위해 정부에 요구하는 기술 역량 시대치가 어느 때보다도 높다. 동시에 AI 알고리즘 편향성 등을 경계하기 위한 신뢰성 확보에도 힘 써야 한다.

전자신문은 우리나라 디지털정부 전문가와 함께 현재 한국 디지털정부 수준을 진단하고, AI 정부로 거듭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인지 논의하기 위한 자리를 마련했다.

[참가자(가나다순)]

△강동석 한국디지털정부협회 회장

△권헌영 고려대 교수(디지털정부혁신위원회 위원장)

△문명재 연세대 교수

△송석현 국립경국대 교수(한국디지털정부학회 학회장)

△사회=김지선 전자신문 SW산업부 차장

◇사회=AI 등 정책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우리 디지털정부의 수준은 어떠하다고 보는가.

◇송석현(국립경국대 교수·한국디지털정부학회 학회장)=정량 평가 지표를 보면, 우리 디지털 정부 수준은 단연 1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시행한 국제 디지털정부 평가, 공공데이터 개방 지수 등에서 1위를 차지했다. 정성적으로 보더라도, 우리나라처럼 데이터가 개방돼 있고 행정 절차가 빠른 곳이 없다는 걸 해외에 나가본 사람들은 모두 공감할 것이다. AI 시대, 데이터가 중요한 요소인만큼 AI 정부를 준비하기 위한 기본 요건을 많이 갖춘 상황이다.

송석현 국립경국대 교수(한국디지털정부학회 학회장) 이동근기자 foto@etnews.com
송석현 국립경국대 교수(한국디지털정부학회 학회장) 이동근기자 foto@etnews.com

◇문명재(연세대 교수)=우리 정부는 1990년대 말부터 전자정부에 이어 2000년대 디지털정부에 이르기까지 열심히 달려왔고, 세계적인 평가에서 고순위를 차지하며 인정받고 있다. 다만, 현재 우리 정부는 디지털 대전환·AX 시대에 접어들고 국민 기대치가 높아지면서 넥스트 디지털정부 방향을 고민하는 단계에 있다.

AI 시대라는 불가역적인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AI를 어떻게 잘 활용해 디지털 정부, AI 기반 정부 모습을 갖춰 나갈 것인지 충분한 논의와 준비가 이뤄져야 한다.

문명재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이동근기자 foto@etnews.com
문명재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이동근기자 foto@etnews.com

◇권헌영(고려대 교수·디지털정부혁신위원회 위원장)=우리 디지털 정부는 기술 수준은 발전했지만, 사회 전반적인 혁신은 이루지 못 했다. 우리가 전자정부를 잘 했던 1990~2000년대에는 인터넷이라는 기술 중심 혁신이 일어났다.

그러나 기술 중심 혁신만 강조하고, 제도권은 움직이지 않다보니 진정한 사회 혁신에는 실패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기술 수준이 발전했지만 기술에 대한 사회 수용성은 낮은 기형적 구조가 만들어졌다. 그 결과 전자정부 순위는 높음에도 중앙정부 신뢰도는 10위권 밖에 머무르는 동떨어진 평가 지표가 나타났다.

사회 수용성은 응용 기술 경쟁력과도 연결된다. 우리나라는 AI 3대 강국 도약을 목표로 하면서 거대언어모델(LLM)과 같은 원천기술 확보에 집중하지만 현실적 어려움이 많다.

디지털 정부는 그동안 이루지 못한 사회적 혁신을 위해 기술만 앞세우기보다는 제도권 변화 등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권헌영 고려대 교수(디지털정부혁신위원회 위원장) 이동근기자 foto@etnews.com
권헌영 고려대 교수(디지털정부혁신위원회 위원장) 이동근기자 foto@etnews.com

◇강동석(한국디지털정부협회장)=디지털 정부 혁신에 아쉬운 점이 있다. 디지털 정부 혁신을 하면서 차세대 사업을 비롯해 대형 과제가 많이 발굴됐다. 당시 '디지털 바이 디자인(디지털 기술을 초기 설계 단계부터 고려해 시스템을 설계하는 것)'을 가장 큰 원칙 중 하나로 세웠지만, 원칙 준수를 위한 실행력이 상당히 떨어지면서 체계적으로 추진하지 못 했다. 이것이 현재 정부의 차세대 시스템 수행 시 어려움을 겪는 결과로 이어졌다고 본다.

차세대 시스템은 최신 기술이 도입되고, 다양한 사용자의 요구 사항이 늘어나면서 시스템 복잡도가 계속 높아진다. 그러나 현재 업계에서는 개발 인력과 예산 부족 등으로 차세대 시스템을 초기 설계 단계부터 고려해 제대로 완성하는 것이 쉽지 않다.

디지털 바이 디자인 원칙은 시스템 복잡도가 보다 높아지는 AI 시대에 더욱 중요하다. 다만, 이 원칙이 단순히 부처별로 무분별하게 도입하게 될 경우 부처별 경쟁 확산과 중복 투자 등의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과거 전자정부 추진 성공 경험을 되새기면서 이 원칙을 전략적으로 발굴하고 시범 추진할 수 있도록 고민해야 한다.

강동석 한국디지털정부협회 초대 회장 이동근기자 foto@etnews.com
강동석 한국디지털정부협회 초대 회장 이동근기자 foto@etnews.com

◇사회=공공에서도 AX를 위한 다양한 정책을 준비 중이다. 디지털 정부를 넘어 AI 정부로 가는 과정에서 개선해야 할 과제가 있다면.

◇문명재=최근 AI 도입 시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묻는 설문에서 'AI 리터러시'와 '법 제도 개선'이 꼽혔다.

AI는 업무를 자동화하고 실질적인 의사결정을 돕는다. AI가 제시한 결과물에 의존해 잘못된 의사결정을 내리지 않도록 공무원들의 AI 리터러시를 확보해야 한다.

AI 활용에 대한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는 등 관련 법 제도 개선도 필요하다.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 AI 활용을 저해하는 사례들이 많다. 직접 실험 연구를 해보니, 사람들은 AI를 통해 문제를 잘 해결했을 경우엔 AI를 칭찬하지만 AI로 인해 문제가 발생할 경우 인간을 질타하는 경향이 있다. 이 같은 점을 고려해 AI 활용 시 책임 소재를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 대한 논의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

◇권헌영=AI 도입 전략과 데이터 거버넌스를 정립해야 한다.

현재 정부 조직 내 AI 도입 전략은 각자 개별적으로 진행 중이다. 이 때문에 민간의 AI 서비스를 고르는 기준도, 어떤 프로그램에 AI를 활용하는 게 적절한지에 대한 기준도 없다.

행정안전부나 현업 부서가 AI 도입 전략을 세워 제시해야 한다. 이를 통해 가성비 좋은 AI 모델을 검증하고, 적절한 기술을 적용해 더 많은 성과를 낼 수 있는 AI 기술을 선택하도록 지원해야 한다. 제대로 된 이해나 명확한 기준없이 민간 AI 서비스를 무분별하게 도입해선 안 된다.

데이터 거버넌스도 정립돼야 한다. 데이터 거버넌스라고 하면 한 부처가 담당해야 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데이터 거버넌스 핵심은 데이터 분류 체계 정립이다. 체계가 정립되지 않다보니, 민감도에 따른 데이터를 적절하게 분류하지 못 하는 일이 벌어진다. 데이터 체계를 정립해야 누가 어떤 데이터를 어떤 형태로 가졌는지, 어떤 과정으로 이용하는지 규명할 수 있다.

◇강동석=좋은 AI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선 고품질 데이터 학습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현재 정부가 개방한 공공 데이터만으로는 민간에서 제대로 된 서비스를 만드는 데 한계가 있다고 한다.

민감 데이터 활용 방안이 필요하다. AI 학습을 위해 개인정보를 이용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민감 데이터를 활용하도록 하는 규제 샌드박스 등을 만들어, 민감 데이터를 안전한 방법으로 온전히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고민해야 한다.

정부의 무분별한 AI 도입도 곱씹어 봐야 한다. 정부 업무계획 통계를 내보니, 33개 중앙행정기관에서 AI 전략 과제로 53개를 시행한다고 한다. 어떤 곳은 AI 도입 자체가 목적인 곳도 있었다. 과연 제대로 업무를 분석해 AI가 필요한 과제를 골랐는지 의문이다.

정부는 최소한 공공 부문 AI 도입을 총괄하고 조정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거버넌스와 같은 것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 거버넌스는 AI 산업 육성을 위한 거버넌스와는 별개로, 정부가 최적의 AI를 도입할 수 있도록 고민하는 체계에 집중돼야 한다.

무엇보다 정부의 기술 리더십 확보가 동반돼야 한다.

전자정부 초창기 성공률이 높았던 이유는 당시 11개 핵심 전략 과제를 선정하고 담당 공무원들이 기획·설계·분석뿐만 아니라 실제 개발 단계까지 직접 참여하며 의견을 냈기 때문이다. 대통령까지 직접 업무 관리 시스템을 디자인할 정도로, 구성원들의 기술 역량이 뛰어났다.

AI는 그보다 훨씬 더 높은 기술 역량을 요구한다. 다가올 AI 정부는 구성원들의 AI 리터러시 제고에 힘 써야 한다. 행안부는 다른 부처를 리드하는 기술 리더십을 확보하고, 전문 기술 지원 조직 체계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송석현=가장 중요한 것은 AI에 대한 이해다. AI를 어디에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를 파악해야 하고, 이를 위해선 AI 생태계를 잘 알아야 한다. AI 생태계는 과거보다 훨씬 복잡해졌다. 과거 디지털 생태계는 단순했지만, 현재는 빅데이터, AI 등 신기술이 빠른 속도로 등장하면서 생태계 복잡도가 높아졌다.

정부가 AI 생태계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민간과 협력이 필요하다. 공무원 부담은 덜고, 민간 전문성을 적극 활용하도록 민간 개방 전략도 고민해야 한다.

데이터 거버넌스와 관련해선 최근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행안부의 '최고인공지능책임자(CAIO)' 직위 신설과 같은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공공 AX를 한다고 해서 한 부처만 쳐다보기보다는, CAIO와 같은 책임자를 두는 게 필요하다. CAIO는 AI만 하는 것이 아니라, AI를 위해 필요한 데이터까지 아우르면서 종합적인 전략을 펼 수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정부혁신 좌담회가 30일 서울 종로구 버텍스코리아에서 열렸다. 왼쪽부터 문명재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권헌영 디지털정부혁신위원회 위원장, 김지선 전자신문 SW산업부 차장, 강동석 한국디지털정부협회 초대 회장, 송석현 국립경국대 교수.  이동근기자 foto@etnews.com
디지털정부혁신 좌담회가 30일 서울 종로구 버텍스코리아에서 열렸다. 왼쪽부터 문명재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권헌영 디지털정부혁신위원회 위원장, 김지선 전자신문 SW산업부 차장, 강동석 한국디지털정부협회 초대 회장, 송석현 국립경국대 교수. 이동근기자 foto@etnews.com

◇사회=AI 정부 구현에 있어 당부하고 싶은 게 있다면.

◇강동석=민간의 AI 서비스를 잘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현재 AI 업계는 투자는 많지만 수익은 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대규모 자금력 가진 기업들이 독점하는 상황 피하기 위해 뛰어난 서비스를 개발하는 중소기업을 지원해야 한다. 이와 동시에 정부 주도로 AI 수요를 혁신적으로 발굴해 민간 시장의 마중물 역할을 하는 등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역할을 해주길 기대한다.

◇송석현=AI 시대에는 데이터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는 게 중요하다. 현재 개인들의 데이터를 기업 등이 학습하고 있는데, 개인들을 대상으로 데이터 주권에 대한 가치를 제대로 알릴 필요가 있다. 기업들이 개인들의 데이터를 확보하는 상황에서 데이터 침해·해킹 발생 시 피해가 막대하게 발생한다. 이를 위해 민·관·학 협력과 논의를 통해 제대로 된 가치를 인정받은 데이터를 거래하는 시장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문명재= AI처럼 기대효과와 위험요인 극명하게 갈리는 게 없다. AI를 통해 단순 업무 등 불필요한 일은 줄이고 본연의 업무에 집중할 수 있다. 그러나 편향성을 띠는 알고리즘 등으로 인한 우려도 만만찮다. 특히나 공공부문에서는 이러한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알고리즘 영향평가를 보수적으로 진행하는 것도 필요하다.

◇권헌영=국가는 AI에 있어 누구보다 뛰어난 역량을 갖춰야 한다. AI는 수많은 데이터를 학습해 수준 높은 의사결정 지원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나 만약 정부 부처에서 AI에 의존하고 의사결정권을 위임하는 수준으로 이어진다면, 국가 의사결정 구조가 무너질 수 있다. 정부는 책임성을 갖춘 AI를 활용하면서 누구보다 뛰어난 AI 역량 확보에 노력해야 한다.

정리=현대인 기자 modernman@etnews.com

사진=이동근 기자 foto@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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