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민 변호사의 IT경영법무]〈14〉 급발진만 아니면 되는 걸까

김형민 “법률사무소 민하” 대표변호사
김형민 “법률사무소 민하” 대표변호사

전 국민적 관심을 받은 강릉 급발진 사건의 1심 민사 판결이 이번 주 수요일에 있었고 도현이 가족은 패소하였다.

언론으로부터 형사 수사기관은 사고 당시 운전자였던 도현이 할머니를 무혐의 처분하였는데, 왜 민사 법원은 원고 패소 판결을 하였는지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다.

형사에서 친족관계나 여론을 좀 더 고려한 점도 있겠지만 이는 기본적으로 '입증책임의 주체와 정도'의 문제다.

형사에서는 무죄추정의 원칙하에 '검사'가 피고인의 고의·과실을 '합리적 의심 없이' 입증해야 하는데 급발진 의심 사건에서는 이러한 입증에 어려움이 있다.

반면 민사 제조물책임법에서는 '피해자'가 차량에 결함이 있다는 것을 '일반인이 의심 없이 진실하다고 믿을 정도(개연성)'로 입증해야 하는데 이는 불가능에 가깝다.

실제로 급발진 의심 사고에서 형사 무혐의 처분은 가끔 있어 왔지만 민사 손해배상책임이 확정된 경우는 단 한 건도 없다.

결국 이번 사건은 검사가 급발진 사고가 아니라는 점을 입증하지도, 도현이 가족이 급발진 사고라는 점을 입증하지도 못한 것이다.

문제는 민사에서 피해자가 개연성을 입증해야 하는 증명책임의 법리가 사실상 패소추정의 원칙처럼 기능하는 데 있다. 이번 판결은 전 국민에게 피해자의 입증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고 향후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권 행사를 위축시킬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입증책임 전환 등 관련 법령 개정과 법원의 입증 정도 완화에 대한 판례 변경이 절실하다.

유럽연합(EU)은 개정 제조물책임지침 제10조 4.에서 '원고(피해자)가 기술적 또는 과학적 복잡성으로 인하여 결함 또는 결함과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의 증명에 과도한 어려움을 겪고 있거나, 원고가 결함의 가능성 또는 결함과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의 가능성을 증명한 경우 결함 또는 인과관계를 추정할 수 있도록 규정'하여 피해자의 증명 부담을 상당 부분 완화하였다.

우리도 EU의 입법례를 참고하여 예외적인 경우 제조사가 제조물에 결함이 없었음을 증명하게 하거나, 피해자의 입증 정도를 '결함이 있을 수 있다(가능성)'는 수준으로 완화할 필요가 있다.

다만 급발진 사고는 ECU와 같은 전자장비의 고장과 브레이크와 같은 기계장비의 고장이 겹칠 경우와 같이 아주 예외적인 상황에서만 발생할 수 있다. 급발진 의심 사고의 대부분은 엑셀을 브레이크로 오인하고 밟는 페달 오인 사고이며 60대부터 급증한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므로 인간이 만든 물건도 그리고 인간의 인식도 불완전할 수 있다.

급발진 사고의 존재 여부를 따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급발진 사고에 대한 사회적 논란과 비용을 줄이고 이를 예방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

급발진이라고 단정해버리는 순간 확증편향으로 인하여 인식오류를 정정할 기회를 스스로 차단해 버리고 대형 사고로 이어지게 된다.

급발진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밟고 있던 페달에서 발을 떼어 양발로 브레이크를 밟아야 한다. 가속페달은 세로로 되어 있어 양발로 밟을 수 없으며 설령 브레이크와 엑셀을 동시에 밟더라도 대부분의 차량(2010년식 이후)은 브레이크 오버라이드 기능에 따라 브레이크가 우선적으로 작동한다.

또한 운전자가 페달을 오인해도 급가속을 방지하는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를 의무화하여 사고를 예방하고, 페달 블랙박스 설치 시 각종 인센티브를 부여하여 불필요한 논란을 줄이는 것도 필요하다.

급발진 사고 여부를 떠나 고 이도현군의 사망과 할머니의 사연이 너무나 가슴 아프다.

그러나 우리는 시청역 사고의 9분의 사망자와 그 가족들의 사연을 잊어서도 안 된다.

이번 판결이 합리적인 법령 개정 방안과 더불어 급증하고 있는 급발진 의심 사고 피해를 예방하고 사회적 논란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함께 고민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김형민 법률사무소 민하 대표변호사 minha-khm@naver.com

저자소개 : 김형민 법률사무소 민하 대표변호사는 인공지능(AI)·정보기술(IT)·지식재산(IP)·리스크관리(RM) 및 경영전략 전문 변호사이다. 법제처·한국법제연구원 자문위원, SBS 자문위원, MBN 자문위원, 교육부·전자신문 IT교육지원캠페인 자문위원, 중소벤처기업부 중소기업인력양성사업 자문위원, 중소기업진흥공단 중소기업인식개선사업 자문위원, 경상북도청 지식재산전략 자문위원, 안동시청 지식재산관리 자문위원, 경상북도문화콘텐츠진흥원 해외투자 및 저작권사업 자문위원 등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