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식시장에는 이런 말이 있다. “Buy the rumor, sell the news.” 소문이 돌 때 미리 투자하고, 실제 뉴스가 나왔을 때 매도하라는 뜻이다. 기업이 아무리 긍정적인 내용을 공시해도, 이미 루머나 예측을 통해 기대가 선반영된 경우, 시장은 발표와 동시에 되레 차익실현에 나선다. 실제로 좋은 뉴스 이후 주가가 하락하는 현상은 이러한 심리를 반영한 결과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다.
각각의 반응은 종목 특성에 따라 저마다의 이유가 있지만, 당장에는 뉴스에 대한 반응이 비합리적으로 보일 수 있다. 특히, 뉴스에 하락하는 경우는, 기업의 '공식 발표'에 대해서 투자자는 각기 특성에 따라 다른 반응을 보이기 때문이다. 즉, 여기서 중요한 건 투자자의 유형이다. 기업이 시장과 소통할 때는 명확하게 두 그룹을 구분하고, 나아가 그들 안에 숨겨진 다양한 니즈를 이해해야 한다.
첫째는 단기 투자자다. 이들은 뉴스나 실적 발표와 같은 신호에 즉각 반응하며 초기 매도세나 매수세를 형성하는 '시장 체온계' 역할을 한다. 데이 트레이더나 스윙 트레이더와 같이 빠른 수익을 추구하는 이들은 즉각적인 재료, 기술적 지표, 시장 심리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들의 빠른 손바뀜은 기업의 유동성을 형성하고, 일정한 거래량을 유지시키며, 나아가 주가 상승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기업 입장에선 이들의 예측 불가능한 초기 반응이 불편할 수 있지만, 이들의 움직임 없이는 장기 신뢰를 쌓아갈 장기 투자자 그룹 또한 형성되기 어렵다.
둘째는 장기 우호 주주다. 이들은 단기 등락에 흔들리지 않고 기업의 본질과 방향성을 믿고 투자한다. 가치 투자자나 배당 투자자와 같은 이들은 경영진의 확고한 비전, 사업 모델의 지속 가능성, 꾸준한 배당 정책, 그리고 ESG 경영과 같은 비재무적 가치까지 면밀히 살핀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단기적인 숫자의 변동이 아닌, 측정 가능하고 예측 가능한 장기 수익 흐름과 기업의 견고한 펀더멘털이다.
한편, 기관 투자자들(연기금, 자산운용사, 헤지펀드 등)은 단기 투자자와 장기 우호 주주의 특성을 동시에 지니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분기별 성과 압박에 직면하면서도, 장기적인 펀드의 운용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정교한 실적 전망치와 같은 단기 지표는 물론, 기업의 중장기 성장 전략과 산업 내 경쟁 우위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필수적이다. 기업은 이들에게 재무적 안정성과 미래 성장 동력을 동시에 설득해야 하는 과제를 안는다.
실제 사례를 통해 기업이 이러한 투자자 간극을 어떻게 관리하는지 살펴보자.
한화오션의 사례는 단기적 뉴스 반응과 장기적 비전 제시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대우조선해양 인수 이후 한화그룹 편입이라는 강력한 모멘텀으로 단기적인 기대감이 크게 작용했다. 이후 대규모 수주 소식 등 긍정적인 뉴스가 연이어 발표될 때마다 단기 투자자들은 주가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며 차익 실현에 나서거나 추가 매수에 동참했다.
하지만 한화오션은 단순히 수주 건수 발표에 그치지 않았다. 방산 및 친환경 선박이라는 고부가가치 사업으로의 사업 재편 로드맵을 꾸준히 제시하고, 미래 기술 투자와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중장기 비전을 투자자 간담회와 보고서 등을 통해 일관되게 소통했다. 이는 단기 등락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기업의 구조적 변화와 미래 성장 잠재력을 보고 투자하는 장기 우호 주주들에게 강력한 신뢰를 주며, 시장의 시선을 단기 실적에서 장기 가치로 전환시키는 데 기여했다.
KB금융지주는 안정적인 실적과 함께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장기 투자자들에게 확실한 메시지를 던졌다. 하지만 은행주는 금리 인하/인상 기대감, 정부 정책 변화 등 거시 경제 변수에 특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특성이 있다. 분기별 실적 발표 시마다 순이자마진(NIM) 변동이나 대손충당금 적립 규모와 같은 단기 지표에 따라 주가에 즉각적인 변동성이 나타나곤 하는데, 이는 단기 차익을 노리는 투자자들의 매매를 유발하는 요인이 된다.
KB금융지주는 이러한 단기적인 시장의 흔들림 속에서도 '소문에 사고 뉴스에 파는' 단기 투자자들의 움직임을 면밀히 관찰하며, 언론 인터뷰나 긴급 컨퍼런스콜 등을 통해 시장 우려를 해소하려는 노력을 병행했다. 동시에 일관된 주주 환원 정책과 배당 성향 확대를 약속하며, 꾸준히 주주 가치를 제고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단순히 좋은 숫자를 보여주는 것을 넘어 디지털 전환, 글로벌 사업 확장, ESG 금융 확대 등 미래 성장 동력을 구체화하고, 이를 통해 지속 가능한 이익 창출이 가능함을 다양한 IR 채널을 통해 설명했다. 이는 단기적인 경제 지표보다는 기업의 펀더멘털과 장기적 성장 전략을 중시하는 기관 및 장기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는 데 주효했다.
결국 중요한 건 메시지의 '이중 설계'다. 단기 투자자에게는 즉각적인 뉴스 해석과 리스크 설명, 그리고 예상되는 단기적인 수치적 영향이 필요하다. 반면, 장기 우호 주주에게는 수익 전망과 전략 방향성, 그리고 기업의 본질적 가치를 담은 메시지가 필요하다. 단기적으로는 '이슈의 해석력'을, 장기적으로는 '비전의 수치화'를 통해 기업은 각기 다른 투자자의 언어에 응답해야 한다.
기업 커뮤니케이션은 이제 단순한 스토리만으로는 부족하다. '누구에게, 언제, 어떤 언어로 말할 것인가'의 전략 싸움이다. 단기 투자자는 충동적 존재가 아니라, 시장의 체온계이며 기업 신뢰도의 첫 반응자다. 뉴스는 계절처럼 지나가지만, 신뢰는 기후처럼 축적된다. 그리고 그 기후는 결국 기업이 던지는 메시지의 타이밍과 설계에 달려 있다.
문경미 ㈜더컴퍼니즈 대표 (기업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chloemoon@thecompani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