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호의 퓨처로그] 증오의 경제

이진호 논설위원실장
이진호 논설위원실장

'증오'가 일상화 된 사회다. 이 글이 안그래도 활활 타오르는 증오에 또 하나 불을 더하지나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하지만, 미래를 향한 여정을 준비하면서 꾸리는 짐 안에 증오 만큼은 절대 가져가선 안된다는 절박함으로 얘기를 풀어가 보려 한다.

증오는 사전적 풀이로 '아주 사무치게 미워하거나, 그런 마음'이라고 나와있다. 미움이란 단어 앞에 무려 2개의 가속기가 달렸다. '아주'와 '사무치게'다. 사실, 이중 하나만 붙어도 미움의 레벨이 껑충 높아진다. 그런데 2개가 다 붙었으니 미움은 끝간데 없이 강해진다.

누군가나 어떤 것이나, 어느 집단을 미워할 수는 있는 법이다. 감정을 가진 이상 살아가며 미움을 갖는건 당연하다. 그 미음의 강도를 높이지 않고, 풀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개인에게나 사회에 있어 굉장히 중요한 일로 꼽히는 것도 자연스런 것이다.

그런데, 요즘 이런 상식은 깨지고, 정신적 평온은 짓밟힌다. 그 상당부분이 세계 1위 경제대국 미국으로부터 온다. 그만큼 우리가 연결돼 있고, 같은 시간을 산다고는 하지만 매일매일 감정 공습을 당하는 느낌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아마도 '자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라는 경제적 민족주의에 기반한 '정책적 증오'를 자신 집권에, 또는 통치 강화에 활용한 21세기 첫 미국 대통령으로 기록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찰리 커크 암살을 겪으며 자신의 증오 편향을 수그러뜨리긴 커녕, 오히려 극으로 몰아가고 있다. 미국 보통 가정의 가장 폭넓은 시청자층을 보유한 ABC의 인기 토크쇼 '지미 키멀 라이브'는 진행자 키멀이 커크의 죽음에 대한 언급을 문제 삼아, 편성에서 제외했다.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의 맹수적 단속은 쉬 낫지 않을 생채기를 내고 있다. 이미 수 명의 젊은 이민자들이 ICE의 총격에 사망했다. 우리나라 국민들에 대한 ICE의 무자비한 체포와 구금은 당분간 지워지지 않을 흉터로 남았다.

이런 여러 사례들에서 우린 '미국 우선주의'라는 명분 아래, 그간 비걱대지만 작동돼오던 미국 이민 시스템과 국제 무역 시스템이 멈췄음을 보았다. 그리고 '우리(미국)'와 '그들(한국을 포함한 타국·외국인)'의 대립 구도로 치환되는 과정에서 '경제적 증오'가 공식화되는 것을 목도했다.

그러고도 증오의 값은 계속 청구되고 있다. 우리나라 1년 총 예산 60%가 넘는 3500억달러를 일시에 납부하고, 그 결정은 전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에 일임하라고 한다. 세계2차대전 이후 평화체제 속에선 한번도 듣도 보도 못한 압박이 가해져 온다.

오죽하면 탄핵의 트라우마를 딛고 출발한 한국 대통령이 미국 언론과 인터뷰에서 '그걸 받았으면 탄핵됐을 것'이라는 떠올리기 조차 싫은 표현을 썼겠는가.

미움은 갈등 정도로 그치지만, 증오는 필연적으로 죽음을 부른다. 갈등 속 경제는 때론 부진하지만, 경쟁도 촉진해 영양제가 된다. 하지만 증오의 경제는 결국, 모두의 멸망으로 이어질 뿐이다.

현재의 우리가 미래까지 공존할 힘은 증오에선 절대 나오지 않는다. 서로 연결되고, 이해하고, 포용하는 바탕 위에서 글로벌 공급망도 국제 교역도, 인적 교류도 다시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다. 차이는 있어도 증오하지 말아야, 경제도 다시 살아날 수 있다.

이진호 논설위원실장 jho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