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근의 대한민국 방산AI③] 미국 민간주도 국방개발이 주는 교훈

[전동근의 대한민국 방산AI③] 미국 민간주도 국방개발이 주는 교훈

1969년 아폴로 11호 달착륙 성공 이후 미국의 우주개발은 오랜 기간 정체됐다.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도 2000년대 초반까지 NASA가 의미 있는 성과를 내지 못하자, “관 주도 개발 방식의 한계”에 대한 문제의식이 커졌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2003년 스페이스X가 등장했다. 수차례 실패 끝에 민간 자본으로 로켓 발사에 성공하며 미국 우주개발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었다. NASA는 모든 것을 직접 개발하던 구조에서 벗어나 핵심기술에 집중하고, 로켓 개발·발사와 같은 비핵심 영역을 민간에 개방하는 방향으로 역할을 전환했다.

스페이스X의 성공은 우주개발을 넘어 미국 국방개혁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DARPA가 인터넷·GPS 등 핵심기술을 창출했지만, AI·드론·자율비행처럼 기술 변화 속도가 폭발적으로 빨라지는 시대에는 기존의 관 주도 방식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미국 국방부는 실리콘밸리에 국방혁신단(DIU)을 설립했고, 팔란티어·안두릴·쉴드AI 등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했다. 이들 기업은 민간 투자를 통해 기술개발 속도를 높였고, 미국 국방부와 협력해 새로운 형태의 '민간 주도 국방개발 생태계'를 구축하며 국방 AI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이 변화 과정에서 NASA나 DARPA 같은 공공 연구기관이 약화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민간이 속도와 효율을 제공해주면서 공공기관은 더 전략적이고 본질적인 역할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NASA는 국가전략기술·표준·장기 프로젝트에 역량을 집중했고, DARPA는 여전히 기초·원천 연구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성과를 내고 있다. 반면, 비용 대비 효율이 중요한 페이로드, 이동 플랫폼, 반복 생산, 테스트 등은 민간이 훨씬 더 빠르고 경제적으로 수행했다. 이 조합이 미국을 세계 최고 수준의 우주·국방 기술 생태계로 끌어올린 힘이다.

우리나라도 우주항공청, 항우연, 국방과학연구소를 중심으로 굳건한 연구개발 체계를 구축해 왔다. 그러나 AI가 산업과 국방의 속도를 결정하는 시대에는 기존의 관 주도 방식만으로 글로벌 경쟁을 선도하기 어렵다. AI 기반 무인체계, 자율비행, 소프트웨어 중심 무기체계는 민간의 빠른 개발력과 정부의 전략적 조정 능력이 결합될 때 진정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모든 것을 직접 개발하는 기관'에서 '핵심기술 중심의 전략기관'으로의 전환이 없다면 국가 전체의 기술 도약 또한 요원하다.

미국의 사례가 주는 가장 큰 교훈은 민간 주도 개발은 공공기관을 약화시키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에서는 “민간 주도 국방개발”이라는 말에 일부 기관이 예산 축소나 역할 축소를 걱정하며 불편해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미국의 경험은 그 반대 결과를 보여준다. NASA와 DARPA는 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역할과 영향력은 더욱 커졌다. 민간이 혁신 속도를 제공해준 덕분에 공공기관은 국가전략기술, 시험·평가, 표준화, 장기 연구개발 등 민간이 대체할 수 없는 분야에서 본연의 역할을 강화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 의사결정권자들은 이제 이러한 질문을 던지고 답을 해야할 때이다. “지금의 연구개발·획득 체계로 세계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있는가?” AI 기반 무인체계, 전장 데이터 통합, 소프트웨어 중심 무기체계는 민간의 혁신과 공공의 전략성이 결합된 생태계에서만 가능하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한 민간 위탁이 아니라, 공공과 민간이 함께 새로운 국방개발 생태계를 구축하는 구조적 전환이다. AI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고 전쟁의 패러다임이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바뀌는 시대, 우리는 민간의 속도와 공공의 전략성을 결합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는지 스스로 질문해야 한다.

미국의 전환이 NASA를 약화시키지 않았듯, 한국도 출연연과 방산 연구기관이 민간과 새로운 역할 분담을 통해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다. 지금이 바로 한국이 AI·우주·국방 4대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결정적 순간이다. 공공과 민간이 함께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 때, 우리는 그 길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전동근

대한민국 방산AI 스타트업

퀀텀에어로 이사회 의장

소성렬 기자 hisabisa@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