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려아연이 미국 정부와 협력해 현지 제련소를 건설한다. 이를 위해 2조8510억원 규모의 제3자배정 유상증자도 단행한다. 고려아연의 대주주인 영풍과 MBK파트너스는 주주가치 훼손 등을 주장하며 법정대응에 나선다.
고려아연은 미국 전쟁부(국방부) 및 상무부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미국 테네시주 클락스빌에 대규모 제련소 건설을 위한 공동 투자에 나선다. '미국 제련소(U.S. Smelter)'로 명명된 이번 프로젝트의 투자 규모는 약 10조원(66억 달러)이며 운용자금과 금융비용까지 포함할 경우 총 11조원(74억 달러)에 달한다.
고려아연은 약 22조8508억원 규모의 자금조달을 위해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신주 220만9716주(보통주)를 발행하며, 주당 발행가액은 129만133원이다. 신주 상장 예정일은 내년 1월13일이다. 제3자 배정 대상자는 미국 크루서블(Crucible JV LLC)이다. 고려아연은 또 크루서블에 약 1323억원을 출자한다. 출자 후 지분율은 10%가 된다. 고려아연은 이 합작사를 통해 미국 내 통합 비철금속 제련소 건설을 위해 약 10조9000억원을 투자한다.
미국 전쟁부와 투자자들은 21억 5000만 달러(약 3조2000억원)를 투입한다. 또한 미 상무부는 CHIPS법에 따라 미국 장비 조달 및 그 밖의 목적을 위해 자금 2억 1000만 달러(약 3100억원)를 지원할 예정이다.
해당 제련소는 단일 제련소 기준 세계 최대 생산능력을 갖춘 울산 온산제련소 모델을 기반으로 최고의 제련 기술과 최적의 공정, 최신화된 제어 시스템을 적용해 약 65만㎡(약 20만평) 규모의 통합제련소로 구축된다.
미국 제련소 건설은 2026년 부지 조성을 시작으로 건설에 착수하며 2029년부터 단계적 가동과 상업 생산에 들어갈 예정이다. 해당 시설은 연간 약 110만톤의 원료를 처리해 54만 톤 규모의 최종 제품들을 생산할 계획이다.
생산 품목은 총 13개 제품으로 아연·연·동 등 산업용 기초금속을 비롯해 금·은 등 귀금속 그리고 안티모니, 인듐, 비스무트, 텔루륨, 카드뮴, 팔라듐, 갈륨, 게르마늄 등 핵심 전략광물이 포함된다. 이와 함께 반도체 황산도 생산된다.
제련소 건립 예정지인 테네시주의 니어스타 제련소 클락스빌 부지는 지반 및 배수, 지하수 등 제련소 운영을 위한 제반 조건이 우수하고, 물류 접근성 역시 양호하다는 평가다. 또한 미국 내 유일한 아연 제련소가 50년 가까이 운영돼 와 아연 공정을 이해하는 전문 인력 수백여 명의 고용 승계가 가능하다. 이 같은 인프라 활용을 위해 고려아연은 니어스타 클락스빌 제련소 인수에 대한 합의에도 이른 상태다.
또한 제련소 원가 경쟁력의 주요 요소인 전력 공급가가 타 지역 대비 상대적으로 저렴해 전력비 절감 효과가 큰 만큼 가공비 측면에서도 유리하다. 연방정부와 주정부 차원의 각종 지원방안도 적극 검토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부 장관은 “테네시에서 추진되는 고려아연의 프로젝트는 미국의 핵심광물 판도를 바꾸는 획기적인 딜”라며 “이 최첨단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를 통해 우리는 핵심광물을 대량으로 국내에서 생산함으로써 외국 국가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국가안보와 경제안보를 단호하게 강화하게 된다”라고 밝혔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은 “미국 내 통합제련소 건설을 계기로 고려아연은 항공우주, 방위산업에 필수적인 핵심광물을 공급하는 전략적 파트너로 입지를 공고히 할 것”이라며 “한미 경제안보 협력을 한층 강화하는 모범 사례가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현재의 글로벌 정세와 미국 정부의 전폭적 지원 등이 맞물리는 지금이 미국 진출의 최적 시기”라고 강조했다.
대주주인 영풍과 MBK파트너스는 미국 제련소 건립 및 제3자 배정 유상증자에 대해 유감을 표시하며 “이는 주주가치 훼손 및 재무안정성 악화를 초래할 수 있는 심각한 사안이라 판단한다”이라고 밝혔다.
영풍과 MBK파트너스는 해당 프로젝트의 재무적 부담이 고려아연에게 돌아가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고려아연이 합작법인 및 제련소 건설을 위한 현지법인에 대해 직접 출자하고 현지법인이 빌리는 7조원의 현지 차입금 전액에 대해 연대보증을 한다는 것을 포함하면 총 8조원을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사업성이 검증되지 않은 초기 단계에서 자사 재무구조를 담보로 제공하는 것은 극도로 위험한 선택이다. 7조원의 연 이자 부담만 3000억원 이상으로 추산된다”라면서 “향후 금리 변동·환율 변동·프로젝트 지연 등으로 인해 수조 원 규모의 손실이 발생할 경우, 그 부담 역시 고스란히 고려아연과 기존 주주에게 귀속된다”라고 지적했다.
영풍과 MBK파트너스는 해당 프로젝트는 우호 지분 확보를 위한 우회구조라고도 했다. 해당 합작법인은 실질적 사업 리스크 없이 고려아연 지분 약 10%를 확보해 배당과 의사결정 구조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들은 “고려아연은 미국 정부와 기업들 출자금 등을 모아 JV를 신설하고, 이 합작법인이 다시 고려아연 제3자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매우 이례적인 방식을 택했다”라면서 “이와 같은 복잡한 우회 출자 구조는 자금조달 목적이라기보다 경영권 분쟁 상황에서 우호 지분을 확보하기 위한 지배구조 개입이라는 합리적 의심을 피하기 어렵다”라고 했다.
아울러 “유상증자는 주주의 신주인수권을 침해하고 회사에 현저한 손해를 발생시키는 위법 행위로 판단된다”며 “법적 조치를 통해 이번 결정을 반드시 시정하고, 고려아연이 최윤범 회장의 사유물이 아니라 주주·협력업체·국가 산업 전체가 신뢰할 수 있는 기업으로 남도록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성우 기자 good_sw@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