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증권형 토큰(STO) 제도화가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면서 국내 금융시장이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그동안 디지털 자산은 제도권과는 다소 거리를 둔 실험적 시장에 머물러 왔고, 토큰 발행과 유통을 둘러싼 규제 불확실성은 기업과 투자자 모두에게 부담이었다. 그러나 법적 틀이 마련되기 시작하면서, 단순히 디지털 자산을 제도권으로 편입하는 차원을 넘어 자본시장 전체의 구조적 변화를 이끌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특히 PF(Project Finance)와 인프라 금융처럼 장기간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분야에서는 STO가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PF 시장 침체는 특정 사건이나 단기 요인만으로 설명되기 어렵다. 금리 상승과 부동산 경기 둔화, 그리고 레고랜드 사태 이후 시장 신뢰가 크게 흔들린 점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자금 흐름이 움츠러들었다. PF는 미래 현금흐름을 기반으로 한 비소구 구조라는 특성 때문에 리스크가 크고, 사업이 지연되거나 수익성이 악화될 경우 금융기관의 부담이 급격히 커진다. 여기에 기존 PF 금융은 기관 중심으로만 운영되는 폐쇄적 구조였기 때문에 외부 충격에 취약했다.
STO가 주목받는 이유는 바로 이 지점을 근본적으로 흔들 수 있는 잠재력 때문이다. STO는 특정 자산이나 수익권을 디지털 증권 형태로 발행해 다수 투자자에게 배분할 수 있도록 한다. PF의 미래 수익을 토큰 형태로 분할해 발행한다면 기존 기관이나 큰손 투자자에게 국한됐 시장이 일반 투자자에게도 열리는 구조로 확장된다. 태양광 발전소의 수익권, 물류센터 임대료, 데이터센터 사용료 등과 같은 안정적 현금흐름을 토큰화해 제공한다면, 프로젝트의 성장 잠재력을 신뢰하는 다양한 투자자층이 유입될 수 있다. 이는 곧 PF 시장 최대 취약점인 자금 편중 문제를 완화하고, 자금조달 경로를 다층적으로 확대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부분은 유동성 개선이다. 기존 PF 상품은 장기 투자 중심에다 중도 매각이 거의 불가능해 투자자 입장에서 '돈이 묶이는 구조'가 가장 큰 부담이었다. STO 기반 PF 상품은 일정 요건 하에 거래소에서 실시간으로 매매가 가능해지므로, 투자자는 필요할 때 언제든 자금을 회수할 수 있다. 이러한 유동성 확보는 PF 시장의 불확실성을 상대적으로 줄여주고, 시장 참여자에게 심리적 안정성을 제공한다. 단순한 편의성의 향상을 넘어, 장기 프로젝트 투자를 촉진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STO는 이와 함께 PF 금융에서 가장 민감한 이슈였던 현금흐름의 투명성을 크게 강화한다.
스마트컨트랙트를 통해 사업에서 발생한 임대료, 발전소 판매 수익 등 현금흐름을 자동 배분할 수 있고, 그 기록이 블록체인에 실시간으로 저장되므로 조작이나 누락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이는 PF 시장에서 오랫동안 문제로 지적돼 온 회계 불투명, 정보 비대칭, 사업 리스크 은폐 문제를 기술적으로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이며, 투자자 신뢰 회복에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PF 못지않게 인프라 금융에서도 STO의 영향력은 클 것으로 예상된다. 도로, 물류, 공항, 데이터센터, 신재생에너지 등 대부분의 인프라 사업은 대규모 자금이 장기간 투입되는 구조다. 기존에는 공공재 성격 때문에 정부와 정책자금, 기관투자자 중심으로 자금이 조달돼 왔지만, STO가 본격화되면 이러한 사업도 일반 투자자에게 문이 열릴 수 있다. 노후 인프라의 개·보수 사업이나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기반의 신재생에너지 프로젝트는 STO와의 결합을 통해 보다 안정적이고 폭넓은 자금조달을 시도할 수 있게 된다. 이는 국가 인프라 경쟁력 강화와 기후금융 확대라는 흐름과도 자연스럽게 맞닿아 있다.
해외 사례도 이를 뒷받침한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이미 부동산, 물류센터, 호텔, 태양광 발전 프로젝트 등이 STO로 발행되어 시장에서 활발히 거래되고 있다. 싱가포르와 스위스는 STO 생태계를 제도권 수준으로 끌어올리며 디지털 자본시장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한국 역시 STO 입법을 단순한 규제 마련으로만 접근해서는 안 된다. 이는 자본시장을 디지털 기반으로 재편하는 장기적 혁신 전략이며, 특히 PF와 인프라 금융에서 그 효과가 가장 두드러질 수 있다. 물론 과제도 명확하다. 담보권 설정과 회수 절차의 법적 정합성을 확보해야 하고, 복잡한 PF 리스크 구조에 맞는 공시 기준과 투자자 보호장치를 세밀하게 설계해야 한다. 디지털 증권 인프라와 기존 예탁·결제 시스템 간의 연동도 중요한 기술적 과제다. 시장 활성화와 투자자 보호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는 규제 설계 역시 필수적이다.
김선미 동국대 경영전문대학원 핀테크&블록체인 책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