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지능(AI) 챗봇은 이제 더 이상 시장에서 매력적이지 않습니다. 오픈소스만 활용하면 누구나 쉽고 빠르게 AI 서비스를 만들 수 있는 세상입니다. 이미 레드오션이죠. 누구나 할 수 없는 영역을 개척해야합니다. 이 부분에서 우리나라는 제조 데이터라는 무기가 있습니다. 미국도 따라올 수 없는 영역입니다. 여기서 우리나라가 승부를 내야 하고, 국내에서 머무는게 아니라 수출산업으로까지 키워야 합니다.”
조준희 한국인공지능·소프트웨어산업협회장은 우리나라가 'AI 3대 강국'으로 도약하는 동시에 미·중 AI 패권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전략을 잘 펼쳐야 한다며 이 같이 강조했다.
조 회장은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때 우리나라의 가장 큰 강점은 조선·중공업 등 제조데이터”라며 “제조 기업이 각자 보유한 데이터를 AX화해 새로운 제조 AI 모델이나 에이전트 서비스를 만드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하며 우리나라가 제조AX 분야에서 승산이 있음을 강조했다.
조 회장은 내년부터 예산이 본격 집행되면서 AI 본무대가 펼쳐진다고 내다봤다. 이 과정에서 AI 공정대가, AI 기본사회 등 건강한 AI 생태계 조성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게 조 회장 판단이다.
조 회장은 “내년에 AI 분야에만 9조9000억원에 달하는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데 올해에 비해 세 배 가량 늘어난 것”이라면서 “단순히 그래픽처리장치(GPU) 구매에만 그치지 않고, 다양한 AI 지원 사업이 우리나라 AI 생태계가 제대로 만들어지기 위해 AI 공정대가 지급이 반드시 동반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조 회장은 “'독자AI파운데이션모델' 등 국산 AI 지원에 대해 '챗GPT' '제미나이' 등과 비교하지만, 누구나 월 2~3만원 비용을 지불하며 AI 서비스를 사용할 순 없다”며 “국산 AI 모델은 '모두의 AI' 등 전국민 대상 AI 서비스 등에 활용되고 AI 격차를 줄이는데 기여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새해 AI 시대가 본격화되는 시점에서 조 회장이 바라보는 시장 이슈에 대한 의견과 제언을 들어봤다.
-지난 한 해를 돌이켜봤을 때 'AI 3대 강국 도약' 목표 도달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다고 보는가.
▲정부와 산업계 모두 상당히 노력했다. 특히 정부 측면에서 속도감이 있었다. 무엇보다 국가AI전략위원회가 출범해서 100일 만에 98개 추진 과제를 담은 'AI 행동계획'을 내놨고, 4대 추진 원칙으로 포용적 AI, 민관 원팀, AI 친화 시스템, AI 균형발전을 명확히 설정했다. 컨트롤타워가 생기고 방향이 잡힌 거다.
특히 지난해에는 국가AI전략위원회의 AI 액션플랜을 비롯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의 부총리 승격, 부총리 주도의 AI 장관협의회가 개최 등 행정·거버넌스 측면에서 여러 성과를 남긴 한 해였다. 산업부의 MAX와 과기정통부·산업부·중기부가 함께하는 '피지컬AI얼라이언스'도 제조AI 분야에서 의미 있는 정책 활동을 펼쳤다.
실질적 인프라 투자도 진전이 있었다. 엔비디아와 GPU 26만장 확보를 약속하고 1만3000장을 실제로 확보했다. 지난해 12월 말부터 학계와 기업이 활용할 수 있게 됐는데, 예전 같으면 이 정도 속도가 나오기 어려웠을 것이다.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에도 네이버, 업스테이지, SKT, NC AI, LG AI연구원 등 5개 컨소시엄이 참여해서 경쟁 체제를 갖췄다. 6개월마다 평가해서 하위 1개 팀을 탈락시키는 서바이벌 방식을 도입한 것도 긴장감을 유지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산업계 측면에서도 움직임이 활발했다. 대기업이 AI 투자를 본격화했고, 스타트업 생태계에서도 AI 관련 창업이 크게 늘었다. 우리 협회 회원사들만 봐도 AI 기반 서비스 개발, 해외 진출 시도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 민관이 같은 방향을 보고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한 해였다고 평가한다.
다만 아쉬운 점도 있다. 아직은 '계획 수립'과 '인프라 구축' 단계라서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성과가 많지 않다. AI 민생 10대 프로젝트도 발표는 됐지만 실제 서비스는 올해 상반기부터 시작된다. 또한 GPU 26만장 중 내년 목표가 3.만7000장인데, 이 속도로는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규제 개선 측면에서도 AI 기본법 통과 등 제도적 기반이 아직 완비되지 않은 부분이 있다.
-새해, AI와 소프트웨어(SW) 산업 주요 이슈는 무엇이라고 보나.
▲새해 AI·SW 산업은 기술 그 자체보다 '어디에, 어떻게 쓰이며, 어떤 위험과 비용을 수반하는가'가 핵심 화두가 될 것이다. 구체적으로 세 가지 이슈에 주목한다.
첫째,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고 실행하는 에이전틱 AI와 산업 특화형 피지컬 AI의 본격 확산이다. 둘째, 여전한 GPU 중심 인프라 비용 폭증과 전력 소모, 양질의 데이터 확보 문제다. 셋째, 고도화된 AI가 야기하는 사이버 위협·격차 심화다.
중요한 것은 이 세 이슈가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에이전틱 AI가 확산될수록 보안 위협은 커지고, 인프라 효율화 없이는 지속가능한 AI 생태계 구축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개별 이슈에 파편적으로 대응하기보다, 기술·인프라·제도를 아우르는 종합적 전략이 필요하다. 정부·산업계·학계가 칸막이를 넘어 협력하고, 단기 성과에 매몰되지 않는 중장기 로드맵을 함께 설계해야 할 때다.
-'AI 3대 강국 도약'을 위해 올해 주력해야 할 부분은 무엇이라고 보나.
▲크게 세 가지로 보고 있다. 첫째, 인프라 확보 속도를 높여야 한다. GPU, 데이터센터, 전력 문제가 병목이 되면 아무리 좋은 모델을 만들어도 학습과 서비스 운영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어렵다. 정부와 민간이 공동 투자하는 방식으로 속도를 내야 하고, 에너지 효율이 높은 AI 반도체 개발도 병행해야 한다.
둘째, 독자 모델의 생태계 확산이다. 허깅페이스 공개 후 오픈소스로 풀리면, 학계와 산업계가 이를 활용해서 국방, 제조, 헬스케어, K-콘텐츠 등 특화 서비스를 만들어내야 한다. 모델 개발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위에서 산업이 돌아가야 진짜 3대 강국이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민생 AI 서비스에서 가시적 성과를 내야 한다. 농산물 가격 정보, 국세·행정 상담, 돌봄·안전 같은 생활 밀착형 서비스가 실제로 작동해야 국민이 AI 강국의 의미를 체감할 수 있다. 정부가 발표한 상반기 4개 프로젝트 착수가 중요하고, 하반기에는 확대 적용까지 가야 한다.

-글로벌 시장에서 우리나라 AI는 어떤 강점이 있나. 어느 국가에서 승산이 있을 것으로 보나.
▲AI 산업은 태생적으로 글로벌 경쟁이다. 우리 기업이 세계 무대에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면 국내에서도 결국 밀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회원사들과 함께 글로벌 시장 문을 꾸준히 두드리고 있다.
우리 강점은 '응용력'이다. 미국은 기초 연구와 초거대 모델, 글로벌 플랫폼에서 압도적이다. 중국은 14억 인구 기반의 데이터와 정부 주도 실행력으로 응용 확산 속도가 빠르다. 우리가 이 두 나라와 똑같은 방식으로 경쟁하면 승산이 없다.
하지만 다른 길이 있다. 우리는 반도체, 자동차, 전자, 디스플레이 같은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 역량을 갖고 있다. 여기에 AI를 결합한 스마트팩토리, 자율주행, 품질관리 솔루션은 충분히 글로벌 경쟁력이 있다. 모든 걸 다 하는 플랫폼이 아니라, 특정 영역에서 고품질 산업별 AI로 승부하는 거다.
미국 시장은 당연히 신경 써야 한다. 최대 단일 시장일 뿐만 아니라 미국 레퍼런스를 확보하면 유럽, 동남아, 중동 진출할 때 신뢰도가 완전히 달라진다. 다만 접근법이 중요하다. 미국 빅테크와 정면 승부하겠다는 건 현실적이지 않다. 그들의 클라우드나 마켓플레이스 위에서 우리만의 특화 솔루션을 제공하는 파트너 전략이 리스크 대비 효율이 높다. 협회도 지난해 12월부터 미국 동부와 서부에 지부를 설치해서 올해부터는 회원사의 미국 진출을 본격 지원할 계획이다.
그래서 '풀스택 AI 수출'을 강조한다. 칩만 팔고 끝나는 게 아니라 반도체부터 인프라, 플랫폼, 솔루션, 표준까지 하나의 패키지로 가져가는 거다. 미국에서 먼저 일부 고객사에 적용해서 성능과 신뢰를 입증하고, 그 레퍼런스를 들고 제3국에 수출하는 구조다.
제3국 타깃도 명확하다. 동남아, 중동, 중남미처럼 AI 인프라는 부족하지만 수요는 급증하는 국가들이다. 이들은 미국이나 중국 빅테크에 종속되는 걸 부담스러워한다. '주권형 AI 스택'을 제안한다. 인프라와 모델은 한국이 제공하고, 데이터 주권은 현지에 남기는 동반자 모델이다. 미국에서 레퍼런스 만들고, 신흥국에서 시장을 넓히는 투트랙 전략, 충분히 승산 있다고 본다.
-일각에선 국산LLM, 국산 NPU 등 국산 AI 기술 경쟁력과 이에 대한 투자에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이 있다.
▲AI는 단일 기술이 아니라 생태계다. 모델만 있으면 되는 게 아니라 반도체, 데이터, 응용 서비스, 인력이 다 맞물려야 하는데, 우리는 그 퍼즐 조각들을 상당 부분 갖고 있다.
소버린 AI, 즉 기술 주권 확보가 중요한 이유는 AI가 국가 안보, 경제, 사회 전반의 핵심 인프라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남의 모델, 남의 클라우드에 전적으로 의존하면 데이터 주권도 산업 경쟁력도 담보할 수가 없다. 지금 정부가 추진하는 독자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이나 허깅페이스 공개, 글로벌 10위권 진입 목표가 다 그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물론 현실적 접근이 필요하다. 모든 걸 국산화하자는 것이 아니다. 글로벌 협력은 당연히 해야 하고, 우리가 잘할 수 있는 영역에 집중해야 한다. 반도체 역량을 AI 칩으로 연결하고, 제조·헬스케어·콘텐츠 같은 강점 분야에서 산업별 AI로 승부하는 거다. '다 하겠다'가 아니라 '우리 것을 갖고 있겠다', 이게 소버린 AI의 핵심이다. 국방력처럼 우리의 무기이자 협상 수단이 될 것이다.
-AI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일자리 등 산업 지형이 상당히 바뀔 것으로 예상된다. 일자리의 경우 어떤 부분에 위기와 기회가 있다고 보나.
▲일자리 변화는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특히 에이전틱 AI가 본격화되면 단순 반복 업무, 데이터 처리, 고객 응대 같은 영역에서 상당한 대체가 일어날 것이다. 화이트칼라 중에서도 정형화된 업무를 하는 분들이 가장 먼저 영향을 받을 거다.
하지만 기회도 동시에 열린다고 본다. 우선 AI와 함께 일하는 새로운 역할이다. AI가 확산될수록 이걸 활용하고, 관리하고, 검증하는 사람의 가치가 올라간다. AI를 잘 쓰는 사람과 못 쓰는 사람의 생산성 격차가 벌어질 텐데, 여기서 기회를 잡는 사람들이 나올 거다.
둘째는 AI가 대체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말씀하신 블루칼라가 대표적이다. 현장에서 몸을 써야 하는 일, 물리적 환경에서 즉각적으로 판단하고 대응해야 하는 일은 AI가 쉽게 넘볼 수 없다. 미국에서 블루칼라 재부상 현상이 나타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또한 창의적 판단이나 감성적 교감이 필요한 영역도 마찬가지다. 예술, 상담, 돌봄 같은 분야는 오히려 희소가치가 높아질 것이다.
결국 위기와 기회가 공존하는 건데, 차이를 만드는 건 준비다. 정부가 여러 교육정책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게 일회성이 아니라 평생 학습 체계로 자리 잡아야 한다. 기업도 기존 인력의 리스킬링에 적극 투자해야 한다. AI 시대에 살아남는 건 AI를 두려워하지 않고 활용할 줄 아는 사람, 그리고 AI가 못하는 걸 할 줄 아는 사람이다. 둘 중 하나라도 갖추면 기회의 시대가 될 수 있다.
-AI 역기능에 대한 우려 목소리도 있다.
▲AI 역기능 가운데 가장 우려되는 건 보안 문제다. 생성형 AI와 에이전틱 AI가 고도화되면서 정교한 피싱, 허위정보 확산 같은 위협이 급격히 커지고 있다. 최근 개인정보 유출 사태를 보면 단순 기술 문제가 아니라 사회 신뢰의 문제로 번질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하나는 디지털 격차다. AI 혜택이 대기업이나 기술 친화적인 사람들에게 집중되고, 중소기업이나 취약계층은 소외되는 구조가 심화될 수 있다. AI가 불평등을 확대하는 도구가 되면 안 된다.
이 같은 역기능을 해소 방안으로는 먼저 기업의 보안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 정부가 반복 보안사고에 징벌적 과징금을 도입하겠다고 했는데, 이런 방향이 맞다고 본다. 동시에 AI 윤리 가이드라인을 산업 현장에서 실제로 작동하게 만들어야 한다. 중소기업과 취약계층이 AI를 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높이는 정책도 병행돼야 한다.

정리=
김지선 기자 rive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