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혼외 성관계와 혼전 동거를 범죄로 규정하고 대통령과 국가를 모욕할 경우 형사 처벌하도록 한 인도네시아의 새 형법이 새해부터 본격 시행되면서 국내외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로이터 통신은 1일(현지시간) 수프라트만 안디 아그타스 인도네시아 법무부 장관의 발언을 인용해 2022년 제정된 형법 개정안이 2일부터 발효된다고 보도했다. 개정 형법에 따르면 혼외 성관계가 적발될 경우 최대 징역 1년, 혼전 동거는 최대 징역 6개월에 처해질 수 있다.
다만 해당 범죄는 배우자나 부모, 자녀 등 가족의 고소가 있어야 수사가 가능한 친고죄로 규정됐다. 이로 인해 국가가 일상적인 사생활에 직접 개입할 가능성은 제한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형법은 개인의 사생활을 넘어 정치적 표현 영역까지 광범위하게 다루고 있다. 현직 대통령이나 국가 기관을 모욕할 경우 최대 징역 3년형이 가능하며, 공산주의나 인도네시아 국가 이념에 반하는 사상을 유포할 경우에는 최대 징역 4년에 처해질 수 있다.
이 같은 내용의 형법 개정안이 제정되자 국제사회는 즉각 우려를 표했다. 유엔과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 등은 표현의 자유와 사생활의 권리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며 비판적인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해 수프라트만 장관은 로이터에 “이번 형법은 인도네시아의 법 체계와 문화적 규범을 반영한 시의적절한 개정”이라며 “이는 다른 나라와는 다른 우리만의 법률 시스템”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동시에 법이 남용될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중요한 것은 국민의 통제이며, 새로운 제도가 처음부터 완벽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또 새 형법은 동시에 시행되는 형사소송법과 함께 권력 남용을 막기 위한 안전장치를 갖추고 있다고 덧붙였다.
혼외 성관계와 혼전 동거 처벌 조항을 두고 외국인 관광객이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그러나 하리야디 수캄다니 인도네시아 관광협회 회장은 친고죄로 규정된 점을 들어 관광업계의 걱정은 상당 부분 해소됐다고 밝혔다.
반면 대통령과 국가 모욕 처벌 조항을 둘러싼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지 법률 전문가 아스피나와티는 해당 조항이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며 “우리가 스스로 만든 새로운 식민지 시대의 법률”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조항의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 법 집행 당국이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적용할 위험이 크다고 지적했다.
세계 최대 무슬림 인구를 보유했지만 비교적 세속적인 국가로 평가받아온 인도네시아에서는 최근 이슬람주의 세력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유일하게 샤리아가 시행되는 수마트라섬 서부 아체주에서는 지난해 혼외 성관계가 적발된 남녀가 공개적으로 태형을 받는 사건도 발생해 논란이 됐다.
김명선 기자 km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