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국회에서 토큰증권(Security Token Offering:STO) 관련 법안이 통과되면서, 국내 자본시장은 중요한 구조적 전환점을 맞이했다. 이번 법제화는 단순히 새로운 금융상품을 허용하는 차원을 넘어 증권의 개념과 유통 방식, 그리고 자본시장 인프라를 디지털 환경에 맞게 재설계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기존 전자증권 제도는 중앙화된 시스템을 전제로 했으나, 이번 개정은 분산원장을 활용한 발행·기록·이전 구조를 자본시장법 체계 안으로 편입시켰다.
STO의 산업적 파급력은 단순히 새로운 투자 상품의 등장에 그치지 않는다. STO는 자산을 쪼개는 기술이 아니라, 자산에 대한 접근 방식을 재정의하는 구조에 가깝다. 부동산, 인프라, 지식재산권, 수익 배분권과 같은 비유동적·고가 자산은 그동안 소수의 자본만 접근할 수 있었다. STO는 이러한 자산을 제도권 금융 안에서 소액 단위로 분할해 다수의 투자자에게 연결할 수 있는 통로를 제공한다. 이는 자본시장 측면에서 보면 투자 저변의 확대이며, 실물경제 측면에서는 자금 조달 구조의 다변화다. 특히 중소·중견 기업, 콘텐츠 산업, 신성장 산업 분야에서는 기존의 은행 대출이나 벤처투자 외에 새로운 금융 선택지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구조적인 의미를 가진다. STO는 '새로운 자산'이 아니라, 기존 자산의 금융화 방식을 혁신하는 도구라는 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다만 법안 통과 자체가 곧 산업 성장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금부터가 더 중요하다. STO는 제도·기술·시장 참여자 간의 정교한 조율 없이는 정상 작동하기 어렵다. 특히 유통 시장의 형성, 투자자 보호 장치의 실효성, 기초자산 평가 기준의 표준화는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STO 시장이 자연 발생적으로 성장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사실이다. 초기에는 발행 비용이 높고, 유동성도 제한적이며, 투자자 인식 또한 충분히 형성되지 않은 상태다. 이러한 초기 시장의 특성상 민간의 자율적 시도만으로는 시장이 일정 규모에 도달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가능성이 크다. 이 지점에서 정부의 역할은 단순한 감독이나 규제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STO 산업은 정책적 설계가 산업 구조를 좌우하는 전형적인 제도 기반 산업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첫째, 유통 인프라 구축을 위한 정책적 마중물 역할을 수행할 필요가 있다. 초기 거래 플랫폼, 수탁·보관 시스템, 표준화된 스마트 계약 구조에 대한 가이드라인은 시장 불확실성을 낮추는 핵심 요소다. 둘째, STO를 단순 금융 실험이 아닌 국가 차원의 디지털 금융 전략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글로벌 주요 국가들은 이미 실물자산 토큰화를 차세대 금융 경쟁력으로 인식하고 제도 경쟁에 나서고 있다. 한국 역시 선제적으로 제도를 정비한 만큼, 이를 산업 경쟁력으로 연결하기 위한 중장기 로드맵이 요구된다. 셋째, 투자자 보호 중심의 소극적 접근에서 벗어나 건전한 위험 감수 구조를 설계하는 방향으로 정책 기조를 전환할 필요가 있다. STO는 본질적으로 투자 상품이며, 모든 위험을 제거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위험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정보 접근성을 높이며, 분쟁 발생 시 신속하게 구제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는 것이다. 이는 과도한 규제가 아니라 정교한 제도 설계를 통해 달성될 수 있다.
이번 STO 법안 통과는 분명 대한민국 자본시장의 경쟁력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는 중요한 출발점이다. 그러나 이 제도적 성과가 실질적인 산업 성장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정부의 전략적 개입과 지속적인 정책 지원이 필수적이다. STO는 방치한다고 성장하는 시장이 아니라, 설계하고 육성해야 하는 시장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과도한 기대도, 불필요한 경계도 아니다. 제도적 안정성을 기반으로 민간의 혁신을 유도하고, 정부가 명확한 방향성을 제시할 때, STO는 한국 금융산업의 새로운 성장 축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이번 법제화가 일회성 제도 도입에 그치지 않고, 장기적인 산업 전략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아울러 이번 법안이 공포 이후 약 1년의 유예 기간을 거쳐 시행될 예정이라는 점이 아쉬운 부분이다. 제도의 안정적 정착을 위한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는 점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으나, 글로벌 자산 토큰화 시장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 1년이라는 시간은 산업 측면에서는 결코 짧지 않다. 이미 주요 국가들은 제도 정비와 시범 사업을 병행하며 시장 선점을 위한 경쟁에 나서고 있으며, 국내 역시 법적 불확실성 해소를 계기로 산업 현장의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시행 시점이 지나치게 늦춰질 경우, 시장의 기대가 위축되고 초기 투자와 사업 추진이 지연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시행령과 하위 규정 마련, 인프라 구축을 단계적으로 병행하되, 제도 시행 자체는 가능한 범위 내에서 최대한 앞당기는 유연한 접근이 요구된다. 조속한 시행은 시장에 명확한 신호를 제공하고, 민간의 투자와 혁신을 촉진하는 중요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김선미 동국대 경영전문대학원 핀테크&블록체인 책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