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산업은행, 기술신용대출 2조원 벽 깨졌다…'모험자본' 역할 실종 우려

한국산업은행 전경.
한국산업은행 전경.

국책은행인 한국산업은행의 기술신용대출(TCB) 잔액이 2조원 아래로 떨어졌다. 최근 2년 새 잔액과 지원 기업 수가 반토막 나며 급격히 위축됐다. 정책금융의 한 축을 담당해야 할 산업은행이 보수적으로 돌아서면서 혁신 기업 자금줄이 막히고 있다는 지적이다.

9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산업은행의 지난해 10월 말 기준 TCB 잔액은 1조9709억원으로 집계됐다. 2023년 9월 말 3조8595억원과 비교하면 2년 만에 48.9% 급감한 수치다.

산업은행 TCB 잔액은 2024년 7월 3조원 선이 무너진 이후 하락세가 가팔라졌다. 같은 해 7월 말 잔액은 2조9304억원으로 3조원대가 붕괴됐고, 이후 감소 흐름이 이어지며 지난해 9월(1조9885억원)에는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여겨지던 2조원 벽마저 깨졌다. 2023년 9월 이후 26개월 연속 감소세다.

[단독] 산업은행, 기술신용대출 2조원 벽 깨졌다…'모험자본' 역할 실종 우려

지원 대상 기업 수도 급감했다. TCB를 이용한 차주 수는 2023년 9월 1811개사에서 지난해 10월 915개 사로 49.5% 줄었다. 지난해 6월 처음으로 1000개사 아래로 내려간 뒤 감소 폭은 오히려 확대되는 추세다.

이 같은 흐름은 은행권 전반 기술금융 동향과는 정반대다. 금융권에 따르면 IBK기업은행의 기술신용대출 잔액은 지난해 125조원을 돌파하며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시중은행 역시 한동안 위축됐던 기술금융 공급을 지난해 하반기부터 다시 늘리며 점진적인 회복 국면에 들어섰다. 국책은행의 모험자본 투입을 통한 기업 육성이라는 현 정부 기조와도 동떨어진 행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산업은행 기술금융이 위축된 배경으로는 건전성 관리 강화와 제도 환경 변화가 동시에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경기 둔화 국면에서 중소·중견기업 부실 우려가 커지자, 산업은행이 위험가중자산(RWA) 관리를 위해 상대적으로 위험도가 높은 TCB 취급 기준을 크게 강화했다는 것이다. TCB는 담보 여신보다 위험가중치가 높게 적용되는 경우가 많아 대출 확대 시 자기자본(BIS) 비율에 부담으로 작용한다.

여기에 금융당국이 '무늬만 기술금융'을 걸러내기 위해 기술성 평가 기준과 사후 관리 요건을 강화한 점도 영향을 미쳤다. 다만 제도 변화는 전 은행권에 공통으로 적용됐음에도 산업은행 실적 감소 폭이 유독 컸다는 점에서 보수적인 잣대를 적용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제기된다.

문제는 산업은행 행보가 정책금융기관 역할과 정면 배치된다는 점이다. TCB는 담보가 부족하지만 기술력과 성장성을 갖춘 기업에 자금을 공급하기 위한 대표적인 정책 수단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기업은행이 공격적으로 기술금융을 확대하며 중소·혁신기업 자금 공급의 버팀목 역할을 하는 동안, 산업은행의 실적이 반 토막 난 것은 뼈아픈 대목”이라며 “혁신 성장 지원이라는 본연의 기능을 상실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산업은행 측은 대출보다는 투자 중심의 지원 전략을 강조했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초기·유망 기술기업 금융 지원 방식에는 기술신용대출뿐 아니라 직접·간접 투자도 포함된다”며 “최근에는 대출보다 투자 방식 선호가 커지면서 투자 위주로 지원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류태웅 기자 bighero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