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주권 흔들…국가 안보·산업 위협

지난 달 27일 정부가 구글이 요구한 축척 1대5000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을 허가한 것에 대해 “득보다 실”이라는 업계 비판이 거세다. 반출 결정은 과정부터가 관련 규정에도 없는 서류 보완 기간을 민원처리법까지 동원해 구글에 부여하며 업계와 전문가 우려를 샀다. 우려가 현실화하면서 안보 위험부터 보호 장치 없이 구글의 공세를 맞서야 하는 국내 산업계 피해까지 최소화할 방안을 찾는 일이 급선무가 됐다. 전자신문은 3회에 걸쳐 반출 결정에 따른 산업계 미칠 파장과 보완 방안은 무엇인지 진단한다.

AI 생성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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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이 반출을 신청한 축척 1대5000 지도는 50m 거리를 지도상 1㎝ 수준으로 표현한 고정밀 자료다. 우리나라 국토 전반을 정밀하게 담고 있어 안보상 중요 자원으로 분류된다. 뿐만아니라 첨단산업 기반 인프라인 고정밀지도를 넘기는 것은 '신흥안보' 관점에서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토교통부는 지난달 27일 국방부·국가정보원 등 8개 부처와 2인의 민간위원이 참여한 '측량성과 국외 반출 협의체' 회의를 열고 구글이 신청한 지도 반출 건을 심의한 결과 허가를 의결했다. 이는 구글이 처음 반출을 요구한 2007년 이후 19년 만으로, 국내 고정밀지도 데이터가 국외로 나가는 첫 사례다.

이날 측량성과 국외 반출 협의체는 크게 4가지 조건을 전제로 구글의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을 허가했다. 구체적으로 △영상 보안처리 △좌표 표시 제한 △국내 기업의 국내 서버에서 원본데이터 가공 후 제한된 정보만 반출 △보안 사고 대응 등이다.

산업에 미칠 파장은 반영되지 않았다. 국토부 관계자는 “법에 따라 협의체에 주어진 권한은 '국가 안보'와 관계된 사안”이라면서 “관계부처 합동으로 공간정보산업 육성·지원방안을 수립할 것을 권고하고, 구글에는 국내 산업과의 상생 방안을 마련할 것을 당부했다”고 말했다. 이는 모두 권고사항일 뿐 강제력이 없다.

27일 관계부처로 구성된 '측량성과 국외반출 협의체'는 경기 수원시 국토지리정보원에서 회의를 열고 구글이 신청한 지도 반출 건을 심의한 결과 허가를 의결했다. 협의체에는 국토교통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외교부, 통일부, 국방부, 행정안전부, 산업통상부, 국가정보원과 민간위원 2명이 참여했다. 〈사진 현대인 기자〉
27일 관계부처로 구성된 '측량성과 국외반출 협의체'는 경기 수원시 국토지리정보원에서 회의를 열고 구글이 신청한 지도 반출 건을 심의한 결과 허가를 의결했다. 협의체에는 국토교통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외교부, 통일부, 국방부, 행정안전부, 산업통상부, 국가정보원과 민간위원 2명이 참여했다. 〈사진 현대인 기자〉

국내 기업 역차별도 쟁점이다. 수십년간 국가세금을 들여 만든 고정밀지도를 구글에 내주지만, 정작 구글은 국내 고정사업장이 없어 세금 문제를 피해 간다는 것이다. 구글코리아가 공시한 감사보고서를 보면 2024년 납부한 법인세는 172억원으로 같은 해 네이버가 낸 세금(3902억원)의 4.4% 수준이었다. 만약 기존 정부 조건대로 구글이 국내에 데이터센터를 설립한다면, 고정 사업장을 확보한 것으로 간주돼 국내 기업과 동등한 조건으로 법인세가 부과될 수 있었다. 그러나 정부는 '국내 기업의 국내 서버 활용'으로 기존 조건을 완화했다.

산업 생태계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정진도 한국교원대 교수는 '고정밀지도 해외 반출 시 2035년까지 10년간 최대 197조원의 경제적 비용을 감수해야 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김대종 국토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내비게이션·길찾기 서비스에 필요한 제한된 데이터만 반출하기 때문에 기존 연구 결과인 최대 197조원보단 조금 적게 나올 순 있다”면서도 “구글은 내비게이션·길찾기 서비스로 관광 분야에 진입할 뿐만아니라, 시장 잠재력이 큰 물류 모빌리티 시장까지 선점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공간정보 업계는 기술 주권을 위협하는 '신흥안보' 차원에서 고정밀지도 반출 허가 결정을 내렸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인현 한국공간정보통신 대표는 “조건부 반출로 구글이 제한된 지도 데이터를 가져가더라도 그 기반 위에 쌓을 수 있는 무궁무진한 데이터는 구글이 모두 갖는 것”이라면서 “지도 반출은 전통적인 '안보'를 넘어 '데이터 주권'의 문제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공간정보산업협회를 비롯한 6개 기관은 공동 성명을 통해 “정부의 즉각적인 산업 보호 및 경쟁력 강화 대책 마련을 강력히 촉구한다”면서 △구글의 고정밀지도 사용에 대한 적정 대가 산출·요구 △국내 기업 역차별 방지 원칙 명문화 △국내 공간정보 산업 생태계 활성화 등 12가지 조건 이행을 제시했다.

현대인 기자 modernma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