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행정 확대 속 남아 있는 사각지대… 농인의 정보 접근 문제

공공기관에 설치된 무인 민원 발급 키오스크 모습. 디지털 행정 서비스 확산 속에서 정보 접근성 문제 역시 함께 제기되고 있다
공공기관에 설치된 무인 민원 발급 키오스크 모습. 디지털 행정 서비스 확산 속에서 정보 접근성 문제 역시 함께 제기되고 있다

공공서비스의 디지털 전환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민원 신청과 증명서 발급, 세금 납부 등 많은 행정 절차가 온라인 플랫폼과 무인 단말기를 중심으로 운영되면서 행정 효율성과 이용 편의성은 크게 높아졌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가 모든 시민에게 동일하게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한국수어를 주요 언어로 사용하는 농인의 경우 디지털 행정 환경에서 여전히 정보 접근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보건복지부 등록장애인 통계에 따르면 국내 등록 청각장애인은 약 43만 명 규모다. 이 가운데 상당수 농인은 일상적인 의사소통에서 한국수어(KSL)를 사용한다. 한국수어는 한국어를 단순히 손동작으로 표현한 방식이 아니라 고유한 문법과 표현 체계를 가진 독립된 언어다.

문제는 현재 공공서비스의 정보 전달 구조가 대부분 한국어 문자와 음성을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다는 점이다. 많은 농인에게 한국수어는 제1언어이고 한국어 문자는 제2언어에 가깝다. 이 때문에 문자 중심 안내는 그들에게 정보 이해 자체를 어렵게 만드는 구조적 장벽이 될 수 있다.

현재 공공기관의 많은 서비스는 문자와 음성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다. 홈페이지 안내문, 모바일 행정 서비스, 키오스크 화면 등도 대부분 한국어 텍스트 이해를 전제로 한다. 현장에서도 이러한 문제는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공공기관 민원 창구에서 수어 통역이 제공되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이며, 복잡한 행정 용어 중심 안내문은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든다.

무인 서비스 환경에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병원이나 공공시설에 설치된 키오스크는 텍스트 중심 메뉴 구조로 구성되는 경우가 많아 농인 이용자가 서비스를 이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또한 많은 디지털 접근성 정책이 시각장애인을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는 점도 지적된다. 음성 안내 기능 등은 비교적 빠르게 확산됐지만 수어 기반 정보 전달 방식은 상대적으로 충분히 고려되지 못했다.

최근에는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도 등장하고 있다. 음성이나 텍스트 정보를 자동으로 수어 영상으로 변환하는 AI 수어 기술이 대표적이다.

AI 수어 기술은 입력된 음성이나 텍스트를 분석해 실시간으로 수어 영상을 생성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이를 통해 공공 안내 시스템, 금융 상담 서비스, 웹 기반 정보 제공 등 다양한 환경에서 수어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제시되고 있다.

일부 금융기관에서는 AI 수어 기반 상담 서비스를 도입해 청각장애인의 금융 접근성을 개선하려는 시도를 시작했으며, 공공기관에서도 안내 서비스에 수어 영상을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문자 중심 정보 구조를 유지한 채 접근성을 보완하는 수준을 넘어 정보 전달 방식 자체를 다양화하려는 변화로 해석된다.

디지털 행정이 확대되는 시대일수록 정보 접근성은 선택적인 기능이 아니라 공공서비스의 기본 조건이 되어야 한다.

장애인의 정보 접근권 보장을 명시한 장애인차별금지법은 공공기관이 정보 접근 과정에서 차별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하고 있으며, 지능정보화 기본법 역시 디지털 환경에서 모든 국민이 정보통신 서비스를 차별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결국 디지털 행정의 완성도는 얼마나 많은 기능을 구현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시민이 실제로 이해하고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됐느냐에 달려 있다.

디지털 전환이 진정한 혁신이 되기 위해서는 기술의 발전 속도만큼이나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정보 전달 구조가 함께 설계되어야 한다. 공공서비스의 디지털화는 결국 얼마나 많은 시민이 실제로 이해하고 이용할 수 있는가에 의해 평가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원지 기자 news21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