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6월 3일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다가오면서 대구광역시 산하 출자·출연기관들이 거센 폭풍전야에 휩싸였다. 지난 2022년 제정된 '임기 일치 조례'가 이번 선거 결과에 따라 처음으로 본격 적용되기 때문이다. 지역 산업계에서는 알박기 인사를 근절하겠다는 조례의 취지가 자칫 지역 혁신 기관의 전문성 훼손과 정치적 예속화라는 부작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구시의 '임기 일치 조례'는 시장이 바뀌면 산하 기관장과 정무직 공무원의 임기를 시장의 임기 종료와 맞춰 자동 종료하도록 명문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번 6.3 지방선거에서 새로운 시장이 선임될 경우, 대구시 산하 20여 개 기관장들의 임기는 오는 6월 30일부로 일괄 종료된다.
문제는 선거를 앞두고 기관장 선임 과정에서 정치적 논리가 앞서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지역 관가와 산업계에 따르면, 임기 종료를 앞둔 일부 기관장들과 차기 자리를 노리는 외부 인사들이 특정 예비후보 캠프를 기웃거리며 '줄대기'를 하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지역의 한 관계자는 “전문성보다는 선거 기여도에 따라 기관장 자리가 논공행상의 전리품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며 “기관장들이 소신 있게 정책을 추진하기보다 차기 권력의 눈치를 살피는 데 급급해지면서 기관 내부 기강은 물론 대외 신뢰도까지 흔들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가장 큰 타격이 예상되는 곳은 대구테크노파크와 대구디지털혁신진흥원(DIP) 등 지역 전략산업을 기획하고 기업을 지원하는 핵심 혁신 기관들이다. 이들 기관은 현재 대구시가 사활을 걸고 추진 중인 ABB(인공지능·빅데이터·블록체인), 로봇, 반도체 등 5대 신산업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ISE) 사업이 본격화되고, 제조 AI 생태계 구축을 위한 대규모 국비 사업들이 추진되는 중요한 시기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관장이 정치적 일정에 따라 대거 교체될 경우, 정책의 일관성과 업무 연속성이 심각하게 단절될 수밖에 없다.

IT 업계의 한 대표는 “지역 산업 육성은 최소 5~10년을 내다보는 중장기 전략이 필수적인데, 4년마다, 혹은 시장의 임기에 따라 기관장이 바뀌면 정책이 조변석개식으로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며 “기관장의 전문성 부재는 결국 지역 기업들에 대한 지원 서비스 질 저하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임기가 보장되지 않는 구조는 유능한 전문가들의 대구행을 가로막는 장벽이 된다. 시장의 잔여 임기에 따라 기관장의 임기가 결정되다 보니, 실력 있는 민간 전문가가 현직을 포기하고 공공기관장으로 올 유인이 사라진 것이다. 결국 '전문가' 대신 '정치권에 눈치보는 인사'들로 기관장 자리가 채워지는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임기 일치 조례의 취지는 살리되, 기술적 전문성이 요구되는 혁신 기관에 대해서는 별도의 검증 장치나 임기 보장 규정을 강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지역 대학 한 교수는 “미국 등 선진국도 정무직 임기는 단체장과 맞추지만, 기술적 중립성이 필요한 영역은 철저히 임기를 보장해 정책의 독립성을 유지한다”며 “단순히 임기를 맞추는 것에 매몰될 것이 아니라, 인사청문회 실효성 강화나 경영 성과에 기반한 임기 연장 등 정치적 외풍으로부터 혁신 기관을 보호할 수 있는 안전장치가 마련되어야 대구 경제의 미래를 담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6.3 지방선거는 대구시 임기 일치 조례가 지역 산업 현장에 '책임 행정'의 약이 될지, 아니면 '전문성 고사'의 독이 될지를 판가름하는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대구=정재훈 기자 jho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