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플러스] 전기차 누적 100만대 돌파…모빌리티 혁명, '캐즘' 넘어 '넥스트'로

현대차 울산 공장 아이오닉 5 생산 라인
현대차 울산 공장 아이오닉 5 생산 라인
내연기관 탈피…SDV 체질개선
배터리 3사와 동반성장 선순환

국내 판매 10대 중 3~4대가 中
韓 중소 부품사 설자리 좁아져

충전 인프라·안전성 확보 숙제
산업보호 연계 핀셋 정책 필요

대한민국 도로 위에 '조용한 친환경 혁명'이 시작된 지 15년 만에 전기차 100만 대 시대가 열렸다.

기후에너지환경부에 따르면 국내 전기차 누적 등록 대수가 이달 100만 대를 돌파했다. 전기차 시장은 초기 얼리어답터 중심에서 대중화 단계 '매스 마켓'으로 성공적으로 진입했다.

이는 단순히 숫자의 증가를 넘어, 내연기관 중심이었던 한국 자동차 산업의 DNA가 소프트웨어 중심 모빌리티(SDV)로 체질이 개선되고 있음을 상징하는 지표다. 전기차는 '캐즘'을 넘어 자동차 산업의 '넥스트'로 향하고 있다.

[이슈플러스] 전기차 누적 100만대 돌파…모빌리티 혁명, '캐즘' 넘어 '넥스트'로

◇자동차 산업 생태계 '판'이 바뀌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전기차는 '비싸고 충전이 불편한 차'라는 인식이 강했다. 그러나 주행거리 향상, 브랜드와 모델의 다양화 그리고 최근 호르무즈 해협 등 지정학적 리스크로 인한 고유가 지속은 소비자들을 전기차 시장으로 이끌었다.

전기차 100만 대 돌파는 국내 자동차 부품 산업 생태계에 근본적인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엔진과 변속기 등 3만여 개의 부품으로 구성되던 내연기관차 체제에서 배터리, 모터, 감속기 중심의 전동화 체제로의 전환이 가속화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를 통해 글로벌 시장에서 기술 경쟁력을 입증했고, 이는 국내 중소 부품사들이 전기차 전용 부품 공급망으로 재편되는 기폭제가 됐다.

특히 삼성SDI, LG에너지솔루션, SK온 등 국내 배터리 3사와의 협력은 한국 전기차가 국산 배터리와 동반 성장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었다.

테슬라 공세에도 현대차·기아가 내수 시장을 수성하고, 최근에는 중국의 BYD 등 글로벌 브랜드들이 가성비를 앞세워 상륙하면서 국내 시장은 세계 전기차 기술의 '테스트베드'로서 위상이 더욱 높아졌다.

◇가성비 앞세운 중국의 공습, 생태계 종속 '경고등'

국내 전기차 100만 대 시대 이면에는 중국산 전기차의 급격한 점유율 확대라는 '적신호'가 켜지고 있다. 압도적인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국내 시장을 공략 중인 중국 전기차는 단순한 시장 점유율 상승을 넘어 국내 자동차 산업 생태계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중국 브랜드들은 핵심 부품인 배터리부터 반도체까지 자체 조달하며 국산차 대비 10~20% 저렴한 가격표를 내걸고 있다. 특히 에너지 밀도를 높인 차세대 LFP(리튬인산철) 배터리를 탑재한 모델들은 주행거리 격차까지 좁히며 국내 소비자의 실속형 수요를 빠르게 흡수하고 있다. 최근 국내에 판매되는 전기차 10대 중 3~4대가 중국 생산 제품일 정도다.

가장 큰 문제는 국내 자동차 부품 산업의 위기라는 점이다. 저가형 중국 전기차가 시장을 장악할 경우, 고품질·고단가 전략을 유지해 온 국내 중소 부품사들의 설 자리가 사라진다. 이는 결국 국내 자동차 제조 기반의 '공동화' 현상으로 이어져 국가 산업 경쟁력 약화를 초래할 수 있다.

이에 자동차 업계는 국가 차원에서 전기차 보조금 제도를 산업 보호와 연계해 더욱 정교하게 설계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와 관련, 기후부는 국내 산업 기여도를 기준으로 보조금 수행 기업을 정하는 '전기자동차 보급사업 수행자 선정 평가 기준'을 하반기 도입할 예정이다.

기아 주요 전기차 라인업
기아 주요 전기차 라인업

◇전기차 대중화를 위해 풀여야 할 과제 '산적'

전문가들은 전기차 100만 대 시대를 넘어 완전한 대중화 단계로 가기 위해 '양적 팽창' 만이 아닌 '질적 내실'에도 집중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가장 먼저 꼽히는 것은 '충전 인프라 확대'다. 아파트 등 공동주택 비중이 높은 국내 주거 환경상, 완속 충전기 보급을 넘어 초급속 충전 인프라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노후화된 충전기 관리 부재와 충전 구역 내 갈등은 시급히 해결해야 문제로 지적된다.

화재 등 안전성에 대한 신뢰 회복도 풀어야 할 과제다. 배터리 화재 사고는 발생 빈도와 관계없이 소비자에게 큰 심리적 장벽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인공지능(AI) 기반의 배터리 관리 시스템(BMS) 정밀도 향상과 사고 발생 시 화재 진압 기술 및 관련 소방 시설 확충 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에너지 그리드와의 통합도 거론된다. 100만 대의 전기차는 움직이는 거대한 에너지저장장치(ESS)다. 차량의 남은 전력을 전력망에 공급하는 V2G(Vehicle to Grid) 기술을 상용화해, 전력 수급 불균형을 해소하는 스마트 그리드의 핵심 축으로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는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는 “전기차 보급이 100만대를 넘어선 것은 고무적이지만 완전한 대중화를 위해서는 기술적·제도적으로 갈 길이 멀다”라며 “전국 1만여 개 주유소를 전기차 충전소와 병행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는 것과 같이, 정부가 자동차 업계와 국내 현실을 감안한 정책을 수립·시행하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함봉균 기자 hbkon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