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후의 '싹수있수다'] “참 잘 잤다” 그 한마디를 위해 일하는 기업

[박용후의 '싹수있수다'] “참 잘 잤다” 그 한마디를 위해 일하는 기업

보이지 않는 것을 읽는 기업, 수면 시장의 경계를 다시 쓰다

에이슬립이 보여주는 슬립테크의 새로운 성장 공식

'잠'은 누구에게나 중요하지만, 정작 이를 제대로 측정된 경험으로 받아본 사람은 많지 않다. 병원에서 진행하는 수면다원검사는 높은 정확도를 제공하지만 비용과 불편함이 크고, 웨어러블 기기는 착용 자체의 번거로움이라는 장벽이 존재한다. 이처럼 수면 데이터는 삶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핵심 영역임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접근하기 어려운 '데이터의 암흑지대'로 남아 있었다.

이 지점에서 등장한 기업이 에이슬립(Asleep)이다. 이들은 기존 방식과 전혀 다른 관점을 선택했다. 몸에 센서를 부착하는 대신, 환경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스마트폰 마이크를 통해 수면 중 발생하는 호흡 소리, 뒤척임, 코골이 등의 신호를 수집하고 이를 AI로 분석한다. 이는 단순히 측정 수단을 바꾼 것이 아니라, 수면을 바라보는 '해석의 문법'을 바꾼 관점의 전환이라고 볼 수 있다.

시장의 정의를 바꾸는 '비접촉'의 전략

이 차이는 단순한 기술적 디테일을 넘어 시장 구조 자체를 바꾼다. 기존 슬립테크 시장은 '기기를 착용할 의지가 있는 사람'으로 한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에이슬립의 방식은 이 전제를 근본적으로 무너뜨린다. 스마트폰만 있다면 추가 비용도, 별도의 행동 변화도 필요 없다. 그 결과 시장의 대상은 '웨어러블 사용자'에서 '전 세계 스마트폰 사용자'로 확장된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에이슬립은 빅테크와의 경쟁에서도 차별화된 해법을 제시한다. 애플이나 구글이 자사 OS와 기기 생태계 안에 사용자를 묶어두는 전략을 취할 때, 에이슬립은 '연결의 범용성'에 집중한다. 삼성전자의 가전, LG전자의 에어컨 등과 연동해 사용자가 잠드는 순간 온도를 조절하고 공기 질을 관리한다. 특정 기기의 소유 여부와 관계없이 수면 데이터가 일상 가전의 지능으로 확장되는 구조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데이터 신뢰와 프라이버시의 공존

소리를 기반으로 한 측정 방식은 필연적으로 프라이버시 우려를 동반한다. 에이슬립은 이를 기술로 정면 돌파했다. 녹음된 데이터를 서버로 전송하는 대신, 기기 내에서 즉시 분석하고 폐기하는 '온디바이스(On-device) AI' 방식을 적용한 것이다. 이는 개인정보 유출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동시에, 사용자 신뢰를 확보하는 핵심 장치로 작동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읽되, 들리지 않아야 할 것은 남기지 않는다”는 원칙이 데이터 신뢰를 구조적으로 설계한 셈이다.

이러한 신뢰를 기반으로 수면 데이터는 단순한 생활 정보를 넘어 경제적 가치로 확장된다. 보험사는 개인의 수면 데이터를 활용해 건강 리스크를 정교하게 분석하고 맞춤형 상품을 설계할 수 있으며, 제약사와 의료계는 디지털 치료제(DTx)의 효과를 검증하는 객관적 지표로 활용할 수 있다. 수면 데이터가 헬스케어 산업 전반을 관통하는 '공통 언어'로 자리 잡는 구조다.

측정에서 해석으로, 기업의 진화

에이슬립의 전략은 명확하다. 경쟁의 축을 '더 정교한 하드웨어'에서 '데이터를 통해 더 의미 있는 해석을 제공하는 것'으로 이동시켰다. 이는 비용 구조에서도 근본적인 차이를 만든다. 사용자가 늘어날수록 비용이 증가하는 제조 기업과 달리, 데이터가 축적될수록 지능이 고도화되는 플랫폼 기업의 성장 곡선을 따르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의료기기 수준의 정확도 검증과 글로벌 규제 대응이라는 과제는 여전히 존재한다. 그러나 이는 성장을 제한하는 장애물이라기보다, 시장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할 관문에 가깝다. 이미 수면 시장은 단순한 '잠'의 영역을 넘어 휴식, 회복, 그리고 데이터 경제가 결합된 새로운 산업으로 재편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에이슬립을 단순한 수면 앱으로 보는 것은 이 기업의 본질을 축소하는 해석이다. 이들은 수면을 측정하는 기업이 아니라, 일상의 공백을 데이터로 채우고 이를 산업적 가치로 연결하는 '관점의 설계자'에 가깝다.

기술은 보통 더 많은 것을 측정하는 방향으로 발전한다. 그러나 시장을 바꾸는 진짜 혁신은 측정이 아니라 해석의 방식이 바뀌는 순간에 발생한다. 에이슬립은 바로 그 변곡점에 서 있다. 그리고 시장은 언제나, 보이지 않던 데이터에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는 순간 다시 정의된다.

박용후 | 관점디자이너(Perspective Designer)

대한민국 1호 관점디자이너이자 피와이에이치 대표. 카카오, 우아한형제들 등 국내 유수의 혁신 기업들의 전략 고문으로 활동하며 '관점의 전환'이 기업의 운명을 어떻게 바꾸는지 증명해왔다. 모두가 '보는 것'에 집중할 때, 그 이면의 '가치'를 설계하며 세상의 고정관념을 깨는 날카로운 통찰을 공유한다. 고정관념을 파괴하는 시각으로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