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연합(EU) 포장폐기물규정(PPWR) 시행이 석 달도 채 남지 않았지만 국내 식품업계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규제는 있는데 구체적인 기준이 없고, 기술 장벽과 비용 부담까지 가중되는 삼중고 속에서 개별 기업 차원의 대응만으로는 한계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식품업계는 규제 불명확성을 큰 문제로 꼽는다. 당장 8월 12일부터 적용되는 과불화화합물(PFAS) 규제가 대표적이다. PFAS는 약 1만여 종에 달하는 불소화 화합물군으로, 소비재 분야에서 폭넓게 사용되지만 8월부터 EU에서 식품 접촉 포장재 내 PFAS 농도가 제한된다. 하지만 아직까지 물질별 기준이나 분석 방법이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다. EU 내부에서도 집행위원회와 회원국이 태스크포스(TF)를 꾸려 PAFS 소재가 사용되는 식품접촉포장재 샘플링과 시험 방법을 개발해 발표할 예정이지만, 수개월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식품 비접촉 포장재의 PAFS 규제 적용 여부는 제조사 판단에 맡겨 식품회사들의 혼란은 더욱 커지고 있다.식품회사들은 자체적으로 시험기관이나 법무법인에 규정 해석관련 의뢰를 진행 중이지만, 이들의 해석도 상이해 정부 차원의 통일된 가이드라인 마련이 요구된다.
친환경 소재 전환과 품질 유지 딜레마도 존재한다. 규제 충족을 위해 재활용 소재로 전환하더라도 국내 재가공 기술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포장재 품질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식품 포장재는 내용물 보호가 기본 요건인 만큼, 재생원료 공급 인프라 확충과 재가공 기술 고도화가 병행되지 않으면 친환경 전환 자체가 공염불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부도 대응에 나섰다. 지난 4월 29일 열린 PPWR 대응 부처 합동 설명회에서 식약처는 EU 환경총국·보건총국에 직접 질의해 얻은 답변을 공유했고, 오는 8월 규제 핵심 내용 중 하나인 비의도적 오염물질(NIAS) 분석 사례집을 안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전년도 직접 수출액 5000만 달러 미만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대응 비용의 70%, 기업당 최대 700만원을 지원하는 시범사업을 운영한다.
업계에서는 보다 현실성 있고 속도감 있는 정부차원 대응을 요구하고 있다. 기업당 최대 700만원인 지원금은 유럽 재활용성 평가기관 의뢰·기술문서 작성·현지 대리인 선임 등 실제 소요 비용을 감당하기엔 역부족이다.
전자상거래를 통한 해외 직판 시에는 판매 국가별로 생산자 등록과 확대된 생산자책임 분담금까지 각각 부담해야 해, K푸드 직판 채널을 확대하는 기업의 비용 부담은 더욱 커진다. 비용문제뿐 아니라 규정 해석 통일, 재생원료 공급 인프라 확충과 재가공 기술 고도화 등은 개별 기업 차원에서 해결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만큼 정부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회색지대에 놓인 국내 기관 간 규정 해석 통일이나 국내 재활용 포장재 가공 기술의 고도화와 안정적인 공급망 구축이 선행되어야 실질적인 규제 대응이 가능해진다”면서 “이와 관련해 정부 정책 및 규제 간의 정합성을 확보하는 등 현장 목소리를 반영한 지원책을 속도감 있게 마련할 수 있게 정부차원의 컨트롤타워 역할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정다은 기자 danda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