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스텍(POSTECH)은 김기훈 기계공학과 교수·석사과정 변준섭 씨 연구팀이 가톨릭대 성모병원 정용안·정현석 교수팀,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KBSI) 김주연 박사팀과 함께 VR 속 촉각 경험이 뇌 활동에 미치는 영향을 정량적으로 분석하는 데 성공했다고 20일 밝혔다. 이반 연구내용은 최근 국제 학술지 '플로스 원(PLOS ONE)'에 게재됐다.
가상현실(VR) 기술은 이미 의료, 교육, 게임 등 일상 곳곳에 스며들고 있다. 그런데 한 가지 꽤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다. 사용자가 VR 속에 얼마나 깊이 빠져들었는지를 객관적으로 잴 방법이 없었다는 것이다. 체험 후 얼마나 실감났는지를 묻는게 사실상 전부였다.
뇌 활동을 정밀하게 찍는 장비인 MRI는 강력한 자기장을 사용하기 때문에, 금속이 들어간 전자 기기를 옆에 가져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연구팀은 금속 대신 공기의 힘으로 작동하는 '공압 방식'의 손가락 촉각 장치를 설계했다. 네 손가락에 서로 다른 촉감을 동시에 전달하며, 자석에 반응하지 않는 소재만 써서 MRI 안에서도 뇌 영상 품질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

연구팀은 이 장치를 활용해 VR 경험 중 촉감을 제공했을 때와 그렇지 않았을 때 뇌가 어떻게 다르게 반응하는지를 비교했다. 일반 병원용 MRI보다 두 배 강한 자기장을 사용해 뇌 활동을 정밀하게 촬영하는 3T(테슬라) fMRI로 실험한 결과는 놀라웠다.
손끝에 촉감이 전해지자, 감각을 담당하는 뇌 부위만 활성화되는 게 아니라, 운동·주의·인지 처리를 담당하는 더 넓은 영역까지 활발하게 반응했다. 특히 촉각이 시각·청각과 정확히 같은 타이밍에 맞아떨어질 때 뇌 반응은 훨씬 강하게 나타났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느끼는 감각들이 한꺼번에 맞아 들어올 때 뇌는 그것을 비로소 '현실'로 받아들이기 시작한다는 뜻이다.
이 기술은 VR 게임뿐 아니라 의료 현장에서도 유용하다. 수술 시뮬레이션 훈련의 정밀도를 높이거나, 공포증·통증 치료에 쓰이는 VR 치료 프로그램의 효과를 뇌 반응으로 직접 검증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 재활 치료나 원격 수술 로봇, 실감형 교육 콘텐츠 등에도 응용 가능성이 열려 있다.
김기훈 교수는 “가상현실에서 진짜 같은 몰입감을 만들려면 눈과 귀뿐 아니라 손끝에서 느껴지는 촉각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라며 “이번 연구는 VR 경험을 설문이 아닌 뇌 활동 데이터로 정량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새로운 플랫폼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라고 했다.
한편, 이번 연구는 보건복지부 보건의료기술개발사업 치의학의료기술 연구개발 사업,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중견연구사업과 우수신진연구사업, 포스코 홀딩스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포항=정재훈 기자 jho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