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텍, 반강자성 물질 속 차세대 반도체 핵심 기술 '스커미온' 흔적 포착

영화 '인셉션'에서 주인공은 팽이를 돌려 지금이 꿈인지 현실인지를 확인한다. 그런데 과학계에서도 오랫동안 '팽이'처럼 존재는 알려졌지만 좀처럼 붙잡기 힘든 대상이 있었다. 바로 '꿈의 자기 소용돌이'라 불리는 '스커미온(skyrmion)'이다.

포스텍(POSTECH) 연구팀이 미국 베일러대 연구팀과 함께 그동안 관측하기 어려웠던 반강자성 물질에서 스커미온의 흔적을 처음으로 포착하며 차세대 저전력 반도체 개발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김지훈 포스텍 친환경소재대학원·물리학과·첨단재료과학부 교수, 물리학과 이연규·윤진영 박사, 박사과정 이찬영 씨 연구팀, 미국 베일러대 루이스 발리카스 교수 연구팀이 함께 진행한 이번 연구는 국제 학술지 'ACS 나노(ACS Nano)'에 최근 게재됐다.

코발트를 넣어 반강자성 상태를 만든 2차원 자성체에서 반강자성 위상 홀 효과 이미지
코발트를 넣어 반강자성 상태를 만든 2차원 자성체에서 반강자성 위상 홀 효과 이미지

'스커미온'은 전자의 자기 방향, 즉 스핀이 소용돌이처럼 꼬여 만들어진 나노미터(㎚) 크기의 자기 구조다. 크기는 매우 작지만 안정성이 뛰어나고 적은 에너지로도 손쉽게 움직일 수 있어 초고밀도 메모리와 저전력 반도체를 위한 핵심 기술로 주목받아 왔다. 그중에서도 '반강자성 스커미온'은 외부 자기장 영향을 덜 받아 더 빠르고 안정적으로 정보를 저장·처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이 반강자성 스커미온이 실제 물질 속에 정말 존재하는지 확인하기가 매우 까다로웠다는 점이다. 존재한다는 건 알겠는데 좀처럼 눈앞에 나타나지 않는 '꿈속의 존재'였던 셈이다.

연구팀은 코발트(Co)를 넣어 반강자성 상태를 만든 2차원 자성체(Fe₃GaTe₂)에 자기장을 걸어가며 물질 내부의 자기 구조가 어떻게 변하는지를 세밀하게 관찰했다. 그 결과, 자기장이 특정 세기에 이르자 지름 약 100~200㎚ 크기 원형자기 구조가 나타났고, 동시에 전기 신호가 강하게 나타나는 '위상 홀 효과'도 함께 커지는 현상을 확인했다.

포스텍 전경
포스텍 전경

자기력현미경로 들여다본 결과, 이 전기 신호가 가장 강하게 나타나는 구간에서 실제로 원형 자기 구조가 형성되는 모습도 나타났다. 이는 그동안 따로따로 연구되던 '위상 홀 효과'와 '실제 자기 구조'가 서로 직접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실험으로 보여준 중요한 결과다. 연구팀은 이 원형 구조가 반강자성 스커미온일 가능성이 크며, 자기장이 더 강해지면 일반적인 스커미온으로 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번 연구는 코발트를 넣은 2차원 자성체가 그동안 붙잡기 어려웠던 반강자성 스커미온을 연구할 수 있는 새로운 실험 무대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나아가 반강자성 스커미온을 안정적으로 만들고 자유자재로 제어하는 기술까지 이어진다면, 더 빠르고 안정적이면서도 전력 소모는 줄인 차세대 메모리와 정보처리 소자 개발에도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김지훈 교수는 “이번 연구는 반강자성 물질에서도 스커미온과 같은 복잡한 자기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으며, 그 과정이 전기 신호로도 확인된다는 사실을 실험적으로 보여줬다는 데 의미가 있다”라며 “향후 반강자성 스커미온을 활용한 저전력 스핀전자소자와 차세대 정보처리 기술 개발의 기반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연구는 한국연구재단 과제와 미국 Department of Energy BES 프로그램, 미국 베일러대 지원, 미국 National High Magnetic Field Laboratory 등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포항=정재훈 기자 jho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