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만 입법원(의회)이 성범죄 사범 등에 대한 태형 도입 여부를 묻는 안건을 포함해 총 3건의 국민투표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대해 대만 내 시민·인권단체들은 신체적 고통을 가하는 비인도적 처벌이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14일 로이터 통신 · 타이베이 타임스 등에 따르면 대만 입법원은 이날 성범죄·아동학대·중대 사기범에 대한 태형제 도입, '비핵화 국가' 정책 폐기, 교통 과태료 수입의 도로 안전 개선 활용 등 3개 국민투표안을 표결에 붙여 가결처리했다.
가장 논란이 된 안건은 제1야당인 국민당(KMT)이 발의한 '태형 도입 국민투표안'이다. 해당 안건은 여당인 민주진보당(DPP) 의원들이 반대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제2야당인 민중당(TPP) 의원들이 기권한 가운데, 찬성 52표 대 반대 51표 단 1표 차로 턱걸이 통과했다.
이번 안건 통과는 강력범죄자를 향한 대중의 깊은 분노와 '처벌 수위를 획기적으로 높여야 한다'는 사회적 심리를 반영하고 있다.
현행 법체계 아래서 성범죄나 아동학대범에 대한 처벌이 국민적 법감정에 미치지 못한다는 불만이 누적되면서, 싱가포르나 말레이시아처럼 신체적 처벌을 통해 확실한 범죄 예방 효과를 거둬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은 것이다. 법원의 판결에 따라 엄격한 절차를 거쳐 태형을 집행하는 방식으로 사법적 실효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그러나 입법원 표결 직후 대만 사형폐지추진연맹, 인권규약이행감독연맹, 대만인권촉진회, 국제앰네스티 대만지부 등 주요 인권단체들은 즉각 공동 성명을 내고 태형 도입 추진을 강력히 규탄하고 나섰다.
인권단체들은 성명을 통해 “태형은 국가 공권력이 고의로 신체적 고통과 수치심을 가하는 비인도적 행위로, 대만 헌법 정신은 물론 고문을 금지하는 국제 인권 규약과 정면으로 충돌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민주주의 핵심 제도인 국민투표를 핑계로 국제법상 금지된 잔혹한 형벌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는 없다”며 “범죄 억제 효과는 처벌의 강도가 아닌 '반드시 처벌받는다는 확실성'에서 나온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국민당과 민중당이 공조한 '비핵화 정책 폐기' 안건과 민중당이 제안한 '교통 과태료의 도로 안전 재원 활용' 안건은 각각 찬성 59표, 반대 51표로 가결됐다. 민중당이 추진했던 존엄사(안락사) 법안 국민투표안은 찬성 7표, 반대 51표로 부결됐다.
이번에 가결된 국민투표안들은 중앙선거위원회(CEC)의 최종 승인을 거쳐 투표 일정이 확정된다. 중앙선거위원회는 오는 11월 28일 예정된 지방선거와 함께 국민투표를 실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투표안이 최종 통과하려면 전체 유권자 약 2000만 명 중 최소 25%(약 500만 명) 이상이 찬성표를 던져야 하며, 찬성표가 반대표보다 많아야 한다. 국민투표를 통과하더라도 법적 강제성이 즉각 발생하는 것은 아니며, 행정원이 3개월 이내 관련 법안을 마련해 입법원에 제출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서희원 기자 shw@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