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업무자동화는 RPA에서 생성형 AI를 거쳐 이제 AI Agent와 Agentic Automation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기술의 진화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이를 실제 기업 안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무엇이 효과를 냈고, 어디에서 예상과 다른 문제가 발생했는지에 대한 경험이다. 새로운 기술의 가능성을 설명하는 일은 어렵지 않지만, 이를 실제 시스템과 프로세스 안에 안착시키며 축적한 경험은 훨씬 희소하다.
이런 점에서 유아이패스 CIO 미하이 파우르(Mihai Faur)는 특별한 위치에 있다. 그는 글로벌 자동화 기업의 IT 책임자인 동시에, 유아이패스가 자사의 기술과 자동화 전략을 내부에 먼저 적용하는 'Customer Zero'의 책임자다. 기업 업무자동화 시장의 변화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보는 동시에, 자신의 조직을 그 변화의 실제 적용 현장으로 삼아온 셈이다.
이 과정에서 축적된 판단과 시행착오는 한 기업의 자산일 뿐만 아니라 생태계가 함께 활용할 수 있는 경험 자산이기도 하다. 앞서 자동화를 경험한 기업이 무엇을 시도했고 어디에서 어려움을 겪었는지가 공유된다면, 뒤따르는 기업들이 같은 시행착오와 비용을 반복하는 것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시장 리더십에는 기술과 사업의 성과를 넘어 생태계의 발전에도 기여할 책임이 따른다. 시장을 이끌어 온 기업의 CIO가 성공뿐 아니라 시행착오와 판단의 기준까지 외부와 공유하는 것도 그런 의미를 갖는다.
이번 인터뷰 역시 이 지점에서 출발했다. 유아이패스의 제품과 기능을 다시 설명하기보다, 이 시대 기업 업무자동화의 최전선에 있는 한 CIO가 지난 수년간 이어진 급격한 변화 속에서 무엇을 보았고, 실제 적용 과정에서 무엇을 배웠으며, 지금 기업들에게 어떤 원칙을 제시하는지 듣고자 했다.

나는 이것이 기술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에이전틱 AI 기술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해졌고, RPA 역시 반복적인 업무를 자동화하면서 이미 많은 성공 사례를 만들어냈다.
진짜 어려움은 엔드투엔드 프로세스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다. 어느 부분이 시스템에 의해 처리되고, 어디에 사람이 필요하며, 어떤 업무가 수작업으로 이뤄지고 있고, 실제로 어디까지 자동화할 수 있는지를 먼저 파악해야 한다.
그런데 많은 기업이 이 프로세스 디스커버리(Process Discovery) 단계를 건너뛰고 곧바로 파일럿에 들어간다. 기업의 업무 지식은 상당 부분 사람들의 머릿속에만 있다. 공유를 꺼려서라기보다 애초에 제대로 문서화된 적이 없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모든 것을 한 번에 자동화하려 해서는 안 된다.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영역부터 프로세스를 제대로 파악하고, 시스템을 연결한 뒤 점차 복잡한 영역으로 확대해야 한다. 기존 프로세스 자체가 불필요하게 복잡한데도 이를 그대로 자동화하는 기업도 있다. 자동화하기 전에 프로세스 자체를 단순화할 수 있는지부터 살펴봐야 한다.
흔한 오해 중 하나가 에이전틱 AI를 프로세스 전체에 적용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규칙이 명확한 단순 업무에는 굳이 에이전트가 필요하지 않다. 단순 자동화나 API 기반 워크플로가 오히려 더 안정적일 수 있다. 반면 송장이나 계약서를 읽고 해석하는 것처럼 실제 추론이 필요한 업무에서는 에이전틱 AI가 분명한 가치를 가진다.
RPA는 규칙 기반 반복 업무에 강하고, LLM은 기존 자동화가 어려웠던 비정형 업무에서 추론을 가능하게 했다. 결국 중요한 것은 RPA로 충분한 업무와 에이전틱 추론이 필요한 업무를 정확히 구분하는 것이다. 에이전틱 AI는 강력하지만 비용도 더 많이 들기 때문에 실제 가치가 있는 곳에 사용해야 한다.
그렇다. 에이전틱 자동화가 확산될수록 오케스트레이션과 거버넌스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된다. 유아이패스는 이미 2015년에 오케스트레이터를 구축했다. 당시에는 RPA를 관리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오늘날에는 그 필요성이 훨씬 커졌다.
AI 에이전트는 기업 시스템 안에서 스스로 작동하는 소프트웨어다. 따라서 기업은 누가 어떤 시스템에 접근할 수 있는지, 크리덴셜은 어디에 보관되고 있는지, 어떤 오류가 발생하고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상장기업이나 규제를 받는 업무라면 이런 통제 체계가 더욱 중요하다. 거버넌스가 없다면 에이전틱 자동화는 자산이 아니라 오히려 부채가 될 수 있다.
또 하나 중요한 변화는 LLM 자체가 점차 범용화되고 비용도 낮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게 되면 차별화의 중심은 모델 자체보다 어떤 모델을 어떤 업무에 적용하고, RPA·API·AI Agent를 어떻게 조합하며, 그 전체 과정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오케스트레이션 레이어로 이동하게 된다.
기업에는 수많은 개별 솔루션을 따로 관리하는 방식보다, 목적에 맞는 모델과 자동화 수단을 선택하고 이를 하나의 체계 안에서 관리할 수 있는 플랫폼이 필요하다. 또한 어떤 판단과 실행이 이뤄졌는지 전 과정을 감사 가능하게 유지해야 한다. 결국 엔터프라이즈 고객이 원하는 것은 단순한 AI 기능이 아니라 거버넌스가 확보된 환경 안에서 사용할 수 있는 AI 역량이다.
첫 번째 교훈은 결국 자사의 프로세스를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CIO나 IT 조직이 특정 소프트웨어 벤더에 지나치게 종속되지 않도록 내부적인 독립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 필요할 때 실제로 시스템을 바꿀 수 있다.
유아이패스의 Customer Zero 사례 가운데 하나가 재무 데이터 인프라를 강화하기 위해 NetSuite에서 SAP로 전환한 프로젝트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ERP를 가능한 한 클린 코어(Clean Core) 상태로 유지하기로 했다. SAP를 과도하게 커스터마이징하는 대신 법인명, 계정과목, 코스트센터 등 필요한 항목만 설정하고 표준 기능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식을 택했다.
핏갭(Fit-Gap) 평가 결과 전체 프로세스의 약 80%가 SAP 표준 프로세스와 그대로 일치했다. 나머지 20%에서는 약 200개의 유저 스토리가 나왔는데, 상당 부분을 SAP 자체의 커스터마이징이 아니라 유아이패스의 자동화로 해결했다. 전체 프로젝트는 약 1년 만에 예정된 일정과 예산 안에서 완료됐다.
흥미로운 점은 개발 자체가 가장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어려웠던 것은 프로세스를 발견하고, 각 부서와 구성원이 그 프로세스에 합의하는 과정이었다. 기술을 구현하는 것보다 '우리 회사가 실제로 어떻게 일하고 있는가'를 정확히 정의하는 일이 더 어려웠던 셈이다.
또 이 경험을 통해 핵심 시스템을 반드시 모든 업무의 사용자 인터페이스로 삼을 필요는 없다는 점도 확인했다. 예를 들어 SAP의 특정 승인 기능이 원하는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았을 때 SAP 자체를 변경하기보다, SAP 밖에 별도의 유아이패스 애플리케이션을 구축했다. 그 결과 회계 담당자는 SAP 트랜잭션 코드를 몰라도 외부 애플리케이션에서 전표를 입력하고 승인 프로세스를 진행할 수 있게 됐다. ERP는 안정적인 기록 시스템으로 유지하되, 사용자가 실제로 일하는 방식은 그 위의 자동화 레이어에서 더 유연하게 설계할 수 있다는 의미다.

단기적으로 ERP가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AGI가 언젠가 ERP 자체를 대체할 만큼 강력해질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당분간 ERP는 계속 존재할 것이다. ERP는 여전히 기업 데이터 인프라의 강력한 토대이고, 특히 상장기업은 시스템의 안정성과 데이터 보호에 계속 의존할 수밖에 없다.
달라지는 것은 사람이 ERP와 상호작용하는 방식, 그리고 ERP가 사람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이다. 에이전트는 결국 사람을 대신해 일을 하기 위해 존재한다. 과거에는 자동화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던 업무도 이제는 식별해 에이전트에게 맡길 수 있게 됐다.
이 변화는 레거시 ERP를 사용하는 기업에도 영향을 미친다. 오래된 시스템 안에 숨어 있는 프로세스를 찾아내고 새로운 환경으로 옮기는 데 프로세스 마이닝과 태스크 마이닝 같은 기술이 활용될 수 있다. 이런 기술이 더욱 정교해지면 레거시 시스템에서 새로운 애플리케이션으로 이전하는 과정도 지금보다 쉬워질 것이다. 따라서 여전히 오래된 ERP를 사용하는 기업이라면 지금부터 마이그레이션을 계획할 필요가 있다.
반면 이미 현대적인 ERP를 사용하고 있다면 모든 업무를 ERP 인터페이스 안에서 해결하려 하기보다 ERP를 최대한 클린 코어로 유지하고, 기업 고유의 업무 차이는 자동화로 해결하며, 그 위에 애그노스틱(agnostic)한 업무 레이어를 두는 방식이 더 적합할 수 있다.
앞으로 사람과 핵심 시스템 사이의 인터페이스 역할을 AI Agent와 자동화가 점점 더 많이 맡게 될 것이다. ERP 자체가 사라진다기보다, ERP는 안정적인 데이터와 트랜잭션의 기반으로 남고 그 위에서 사람이 일하는 방식이 크게 달라지는 것에 가깝다.
한국은 처음부터 유아이패스에게 매우 중요한 시장이었다. 약 7~8년 전 한국 법인을 설립할 당시부터 큰 잠재력을 봤고, 일본에서와 마찬가지로 본사 인력을 파견하기보다 현지 인력이 현지 고객과 직접 소통하는 방식을 택했다.
한국 경제는 강하고 개방적이며, 한국의 제품은 세계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특히 한국 기업들은 새로운 기술을 빠르게 받아들이고 이를 실제 업무와 비즈니스 성과로 연결하는 데 매우 적극적이다. RPA에서 AI Agent와 Agentic Automation으로 자동화의 범위가 확대되는 지금, 한국 기업들이 어떤 과제를 안고 있고 이를 어떻게 풀어가고 있는지도 관심 있게 보고 있다.
유아이패스 역시 Customer Zero를 통해 많은 시행착오와 경험을 축적해 왔다. 이러한 경험을 한국 고객들과 더 많이 공유하고, 한국 기업들이 AI와 자동화를 실제 업무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보다 긴밀하게 소통하고 싶다. 한국은 지금도 유아이패스의 APAC 사업에서 매우 중요한 시장이다.
“Customer Zero가 남긴 것, 기술보다 먼저 프로세스를 보라”
미하이 파우르의 인터뷰를 관통하는 메시지는 기업 자동화에서 기술의 선택과 적용에는 순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AI Agent의 성능이 빠르게 향상되고 있지만 모든 업무를 Agent로 전환하는 것이 곧 AX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먼저 기업의 엔드투엔드 프로세스를 정확히 파악하고 불필요한 복잡성을 걷어낸 뒤, 업무 특성에 따라 RPA와 API, AI Agent를 적절히 배치해야 한다. 그 위에서 각각의 기술과 시스템을 연결하고 통제하는 오케스트레이션과 거버넌스가 갖춰져야 자동화가 파일럿을 넘어 실제 운영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판단에는 유아이패스가 지난 10여년간 쌓아온 기술적 경험이 배경으로 자리한다. RPA를 기업 자동화의 주요 기술로 확산시킨 데 이어 프로세스 마이닝과 태스크 마이닝, 오케스트레이션과 거버넌스 영역으로 기술 범위를 넓혔고, 이제는 LLM의 추론 능력을 기존 자동화 기술과 결합하는 Agentic Automation으로 확장하고 있다. 기존 자동화의 강점을 유지하면서 추론이 필요한 영역에 AI Agent를 결합하고, 이 전체 환경을 통제 가능한 플랫폼으로 운영하려는 접근이 유아이패스가 제시하는 엔터프라이즈 자동화의 방향이라고 볼 수 있다.
'Customer Zero' 경험은 이 전략이 실제 기업 내부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유아이패스는 SAP 전환 과정에서 표준 프로세스를 최대한 유지하면서 필요한 차이를 자동화로 해결했고, 기술 구현보다 프로세스를 정확히 파악하고 조직 내 합의를 이끌어내는 일이 더 어렵다는 점도 직접 경험했다. ERP의 안정성을 유지하면서 그 위에 보다 유연한 자동화·AI 레이어를 구축하려는 접근 역시 같은 맥락에 있다.
이번 인터뷰의 의미도 여기에 있다. 기업 업무자동화 기술을 공급하는 기업이 동시에 그 기술의 첫 번째 고객이 되어, 실제 적용 과정에서 얻은 판단과 시행착오를 공개했다는 점이다. 미하이 파우르 CIO는 자사 기술의 가능성을 설명하면서도 모든 문제를 AI Agent로 해결하려 하지 않았고, 업무의 특성에 따라 기술의 역할과 적용 범위를 분명히 구분했다. 'Customer Zero'가 축적한 이러한 경험은 유아이패스의 기술적 역량을 보여주는 자산인 동시에, 비슷한 전환을 준비하는 기업들이 참고할 수 있는 산업 생태계의 소중한 자산이기도 하다.
인터뷰에서 느낀 미하이 파우르의 태도 역시 이런 메시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자사의 기술적 강점을 강조하면서도 Agent가 필요하지 않은 영역과 실제 도입 과정의 어려움, 특정 벤더에 대한 종속의 문제까지 담담하고 진정성 있게 이야기했다. 기술의 가능성을 낙관하면서도 그 한계와 현실적인 조건을 함께 바라보는 그의 시각에서 실제 기업 IT를 운영해 온 CIO로서의 고민과 절제, 그리고 경륜을 엿볼 수 있었다.
전자신문인터넷 류지영 디지털사업국 국장
전자신문인터넷 유은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