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가 반도체 강국 위상을 이어가려면 '실무 중심' 설계인재 양성이 중요합니다. 이론·시뮬레이션을 넘어 자신이 설계한 반도체를 칩으로 만들어 측정·검증하는 경험이 필요합니다. 공공팹의 역할도 여기에 있습니다.”
정동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특화반도체기술센터장의 말이다. 반도체 설계는 이론과 실제의 간극이 큰 분야다. 설계한 회로를 실제 공정을 통해 칩으로 구현하고 결과를 직접 확인하는 경험이 실무역량 제고에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ETRI는 40여년간 축적한 반도체 공정 기술과 인력·장비를 기반으로 개방형 연구개발(R&D) 플랫폼으로서 역할을 수행해왔다. 대표 사례가 과학기술정보통신부·한국연구재단 지원으로 추진 중인 '내 칩(My Chip) 제작서비스'다. 여러 설계를 하나의 웨이퍼에 함께 제작하는 멀티프로젝트웨이퍼(MPW) 방식으로 학생들이 설계한 회로를 실제 칩으로 제작·검증할 수 있게 지원한다.
2023년 시범서비스 이후 올해 2차 MPW까지 누적 참여 인원이 806명에 달한다. 올해 1·2차에만 219명이 참여해 지난해 총 216명을 이미 넘었다. 정 센터장은 “제공된 프로세스 디자인 키트(PDK)를 활용해 학생들이 회로를 설계하고 데이터(DB)를 제출하면 ETRI, 서울대,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이 칩을 제작·패키징해 제공한다”며 “자신의 설계 결과를 실제 측정값과 비교·검증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학생과 교수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사업이 빠르게 안착한 배경으로는 지속적인 정부 지원을 꼽았다. 그는 “과기정통부·연구재단이 공공 인프라를 인재양성에 개방하고 지원하면서 ETRI 등 공공팹이 현장에서 실칩 중심 교육을 구현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설계환경도 중요 자산이다. ETRI는 1989년 4메가(M) DRAM, 1991년 16M DRAM에 이어 1992년에는 세계 최초로 64M DRAM 개발을 이끈 곳으로 반도체 설계·공정 기술 및 인프라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집적회로를 설계하기 위한 PDK를 구축해, 교육 목적으로 자유로이 활용할 수 있도록 제공하고 있다. 실제로 고려대·서울과기대·제주대·서경대 등이 정규 강의에 이를 활용하고 있다.
이에 각계의 관심도 커지고 있다. 정 센터장은 “올해부터는 반도체 설계 솔루션 기업 세미파이브가 '내 칩(My Chip) 경진대회'에 후원하는 등 설계인재 양성에 기업도 힘을 보태고 있고. 정부도 사업의 확대·지속을 공언한 상태”라고 말했다.
이제는 이런 성과를 국내 시스템반도체 생태계 전반으로 확산할 필요가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과기정통부·연구재단이 추진해 온 실칩 중심 인재양성 성과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고 공공팹이 대학과 산업현장을 연결하는 플랫폼으로 역할을 넓힌다면, 대한민국 시스템반도체 경쟁력을 높이는 중요 기반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대한민국 시스템반도체 경쟁력을 한 단계 더 높이려면 학생 대상 인재양성과 더불어, 중소 팹리스가 자신의 설계를 실제 칩으로 구현·검증할 수 있는 기회도 필요하다”며 “공공팹이 초기 실칩 검증을 지원하고, 가능성이 확인된 제품이 민간 파운드리의 양산과 글로벌 시장 진입으로 이어지는 성장사다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영준 기자 kyj85@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