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클릭 이후를 지배하라, 유통·물류의 승부처 '피지컬 AI'

김은찬 한양대학교 공과대학 정보시스템학과 및 인공지능학과 교수
김은찬 한양대학교 공과대학 정보시스템학과 및 인공지능학과 교수

추천 인공지능(AI)이 소비자 선택을 바꿨다면, 피지컬 AI는 선택된 상품이 움직이는 방식을 바꾼다. 당일·새벽배송이 일상이 되고 판매 채널이 오프라인 매장, 온라인몰, 라이브커머스로 확장되면서 물류 현장의 변동성은 커졌다. 상품 수는 늘고 주문은 소량·다빈도화 되었으며, 프로모션과 반품은 작업량을 순식간에 바꾼다. 이제 유통 경쟁력은 고객이 클릭한 이후, 수요 신호를 실제 재고 배치와 피킹, 분류, 배송으로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전환하느냐에서 결정된다.

로봇이 있다고 모두 피지컬 AI인 것은 아니다. 기존 물류 자동화는 정해진 레일, 좌표, 작업 순서를 반복하는 데 최적화돼 있다. 반면 피지컬 AI는 카메라·라이다·바코드·RFID 등으로 사람과 상품, 설비의 상태를 인식하고, 주문과 재고 데이터를 바탕으로 다음 행동을 계획한 뒤 로봇과 장비를 움직인다. 실행 결과는 다시 데이터로 수집돼 다음 판단을 개선한다. 핵심은 로봇 한 대의 성능이 아니라 '인지-예측-계획-실행-피드백'이 이어지며 결과가 다음 판단으로 돌아오는 폐루프 운영 구조다.

물류센터에서 이 구조를 구현하려면 여러 층의 기술이 맞물려야 한다. 먼저 비전 AI와 센서 융합 기술이 상품의 위치, 작업자의 동선, 통로 혼잡, 설비 이상을 실시간으로 파악한다. 그 위에서 AI는 출고 마감시간, 주문 우선순위, 재고 위치와 장비 가용성을 함께 계산한다. 무인운반차(AGV), 자율이동로봇(AMR), 무인지게차, 로봇팔, 소터가 계획을 실행하고, 창고관리(WMS)·주문관리(OMS)·전사자원관리(ERP)는 주문과 재고, 경영 정보를 연결한다. 빠른 충돌 회피나 이상 정지는 현장의 엣지 AI가 맡고, 전체 작업 배분과 최적화는 상위 운영 플랫폼이 담당하는 구조가 현실적이다.

여기에 생성형 AI와 에이전틱 AI가 결합하면서 자동화의 성격도 달라진다. 관리자가 “오후 3시 이전 긴급 주문을 우선 처리하라”고 목표를 제시하면, 에이전틱 AI는 이를 피킹·이송·분류·포장 작업으로 나누고 여러 로봇과 설비에 배분할 수 있다. 비전·언어 모델을 적용하면 작업자는 자연어로 로봇에 임무를 설명할 수 있다. 다만 AI가 모든 설비를 자유롭게 제어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 공정 배치나 운영 정책의 중요한 변경은 디지털 트윈에서 먼저 검증하고, 실시간 제어에서는 안전 규칙을 벗어난 판단을 차단하거나 사람의 승인을 받도록 해야 한다. 산업 현장의 피지컬 AI는 자율성만큼 통제 가능성이 중요하다.

세계 시장은 이미 개별 로봇에서 다중 로봇 운영으로 이동하고 있다. 아마존은 물류 네트워크에 100만 대 이상의 로봇을 배치하고, 생성형 AI 기반 모델로 로봇 군집의 이동 효율을 높이고 있다. 국제로봇연맹(IFR)에 따르면 2025년 판매된 전문 서비스 로봇 가운데 운송·물류용은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이러한 흐름은 물류 로봇이 단순 장비 판매를 넘어 운영 소프트웨어와 데이터, 유지보수가 결합된 서비스로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은 전자상거래 이용률, 촘촘한 배송망, 제조·IT 인프라, 다양한 물류 현장이라는 강점을 갖고 있다. 그러나 현장마다 로봇과 설비를 개별 도입하고 프로젝트가 바뀔 때마다 시스템을 새로 연결하는 방식으로는 규모를 만들기 어렵다. 서로 다른 제조사의 장비와 WMS·ERP를 연결하는 표준 인터페이스, 작업 성공과 실패를 함께 축적하는 현장 데이터 체계, 안전성과 투자 효과를 검증할 공통 기준이 필요하다. 중소 유통·물류기업이 초기 비용을 감당할 수 있도록 모듈형 자동화와 서비스형 로봇(RaaS)도 확대해야 한다.

피지컬 AI의 목적은 사람이 없는 창고를 만드는 데 있지 않다. 반복적이고 위험한 이송은 로봇이 맡고, 사람은 예외 처리와 품질 판단, 안전 관리, 공정 개선에 집중하는 구조가 더 현실적이다. 한국이 겨뤄야 할 대상도 가장 싼 로봇이 아니다. 상품 클릭부터 재고 배치, 배송과 반품까지 이어지는 전 과정을 하나의 데이터 순환 구조로 만드는 능력이다. 결국 유통·물류의 다음 승자는 로봇을 가장 많이 보유한 기업이 아니라, 현장의 변화를 가장 빠르게 이해하고 안전한 행동으로 전환하는 기업이 될 것이다.

김은찬 한양대 공과대학 정보시스템학과 및 인공지능학과 교수 eckim@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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