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마 바티칸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을 장식한 미켈란젤로의 대작 '천지창조'.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명작으로 꼽히는 이 그림 뒤에는 거장의 처절한 고통이 숨어 있다. 미켈란젤로는 약 4년 동안 높은 작업대 위에 올라서서 고개를 뒤로 젖히고 팔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려 그림을 그렸다. 이 과정에서 목뼈와 어깨 관절, 허리에 극심한 무리가 가해졌고, 훗날 어깨와 허리에 디스크 등 큰 병을 얻어 극심한 통증에 시달렸다고 전해진다.
만약 지금 이 시대에 미켈란젤로가 다시 태어나 웨어러블 로봇인 '엑스블 숄더(X-ble Shoulder)'를 입고 '천지창조'를 완성했더라면 어땠을까? 상체를 들어 올릴 때 어깨와 허리의 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여주는 기술의 도움을 받았다면, 거장은 몸을 상하지 않고 건강하게 자신의 예술적 열정을 마음껏 꽃피울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상상은 이미 우리 영농 현장에서 현실이 되고 있다. 농촌은 과수원의 적화·적과 작업이나 온실 상부 작업처럼 고개를 들고 팔을 올려 일해야 하는, 미켈란젤로의 작업과 닮은 고된 노동이 반복되는 공간이다. 이에 농촌진흥청은 작년 현대자동차와 업무협약(MOU)을 체결하고 어깨 근력 보조 웨어러블 장치인 엑스블 숄더의 현장 실증 및 보급에 협력해 왔다.
실제로 현장 농민들의 목소리는 이 기술의 가치를 명확히 증명해 준다. 복숭아와 포도 등 상부 작업이 많은 농가에서는 1.9kg의 초경량 무동력 구조 덕분에 “착용한 사실조차 잊을 만큼 편안하다” “팔을 올릴 때만 정교하게 힘을 더해주어 어깨와 허리의 피로도가 눈에 띄게 줄었다”는 고무적인 평가를 전했다. 농촌진흥청 연구 결과에서도 엑스블 숄더 착용시 어깨 근육 사용량이 평균 33% 감소하고 관절 부하가 크게 완화되는 등 농작업 환경 개선 효과가 수치로도 뚜렷하게 입증됐다.
이처럼 현장에서 결실을 볼 수 있었던 바탕에는 산업체가 축적해 온 세계 최고 수준의 로보틱스 기술력이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보스턴 다이내믹스(Boston Dynamics) 인수를 비롯해 로봇 분야에서 글로벌 명성을 쌓아가고 있으며, 최근에는 전라북도 새만금을 중심으로 로봇, 수소, 재생에너지 등 미래 산업 분야의 협력을 대폭 확대해 나가고 있다.
이러한 첨단 기술력과의 접점을 찾기 위해 9월에 개최된 '미래농업 기술협력협의회'는 양 기관이 서로 추진 중인 미래 연구 방향과 핵심 기술을 공유하는 소중한 교류의 장이었다. 엑스블 숄더라는 결실을 계기로 마련된 이번 협의회는 첨단 기술과 농업 연구가 서로의 언어와 지향점을 이해하는 의미 있는 첫걸음이었다.
앞으로 농촌진흥청은 이번 교류를 발판 삼아 대동, LS엠트론 등 주요 농기계 기업들과 함께 실무협의체를 구성하고, 현장 맞춤형 농업로봇과 스마트농업 기술을 비롯한 다각적인 공동협력 방안을 지속적으로 모색해 나갈 계획이다.
필자는 이 여정이 농업을 국가전략산업의 한 축으로 세우는 교두보가 되기를 바란다. 16세기 미켈란젤로의 어깨를 지켜줄 수 없었던 기술이 500년이 지난 지금 우리 농민의 어깨 위에서 현실이 되었듯, 없던 기술을 있게 만드는 것이 농업과학기술이 만들어가야 할 혁신이다. 민·관의 활발한 기술 교류와 협력이 로봇·에너지·인공지능(AI)을 품은 미래농업의 확실한 이정표가 되기를 기대한다.
방혜선 농촌진흥청 연구정책국장 bangheaso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