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개월 된 아기에게 변비에 좋다는 이유로 비살균 원유(생유·raw milk)를 먹였다가 심각한 대장균 감염으로 이어진 사례가 알려졌다. 이 아기는 세 차례 심정지를 겪고 급성 신부전으로 혈액투석까지 받았으며, 이후에도 신장 질환 위험을 안고 살아가게 됐다.
2일(현지시간) 뉴욕포스트에 따르면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거주하는 에밀리 매리스의 딸 브루클린은 최근 차 안에서 노란색과 청록색을 띤 답즙을 토한 뒤 급히 병원으로 옮겨졌다.
병원에 도착했을 당시 브루클린의 상태는 매우 심각했다. 급성 신장 기능 저하가 나타났고 호흡을 돕기 위한 인공호흡기와 혈액투석이 필요했다. 치료 과정에서 심장이 세 번 멎는 위급한 상황도 발생했다.
검사 결과 원인은 치명적인 대장균 감염으로 확인됐다. 브루클린은 대장균이 만들어내는 독소로 혈관과 혈액세포가 손상되는 용혈성요독증후군(HUS), 이른바 '햄버거병'을 앓은 것으로 파악됐다.
HUS는 장출혈성 대장균 등이 만들어내는 시가 독소가 혈관을 공격하면서 발생한다. 혈관 내부에 작은 혈전이 생기고 적혈구가 파괴되면서 신장의 미세혈관까지 손상될 수 있다. 이 때문에 급성 신부전과 요독증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심한 경우 여러 장기의 기능이 동시에 떨어질 수 있다.
브루클린은 며칠 동안 투석을 받은 끝에 생명을 건졌다. 하지만 이후 보행에 어려움을 겪게 됐으며 장기적으로 신장 질환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햄버거병'이라는 이름은 과거 오염된 햄버거 패티를 통해 집단 감염 사례가 발생하면서 붙었다. 하지만 감염 경로는 육류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살균하지 않은 우유나 유제품, 오염된 채소와 물 등을 통해서도 대장균에 노출될 수 있다.
특히 어린아이들은 위험도가 높다. 면역 기능과 신장 발달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5세 미만 영유아는 감염 후 중증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크다. 초기에는 복통이나 설사, 구토, 혈변 등 일반적인 장 질환과 비슷한 증상이 나타날 수 있지만, 이후 소변량 감소와 빈혈, 부종 등이 동반될 수 있다.
감염이 심해지면 신장 기능이 급격히 떨어지는 것은 물론 신경계 이상이나 의식 저하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생명을 구하더라도 일부 환자는 이후 만성 신장 질환이나 고혈압 등의 후유증을 겪을 수 있다.
브루클린이 대장균에 노출된 원인은 약 6개월 동안 섭취해온 살균하지 않은 생 산양유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에밀리는 미숙아로 태어난 딸에게 가공식품을 최대한 줄인 식단을 제공하려 했다. 시판 분유의 첨가물과 일반 우유가 아이의 변비를 악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던 중 SNS와 온라인 육아 커뮤니티에서 생 산양유가 장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를 접했다.
이후 그는 인근 농장에서 갓 짠 원유를 직접 구입해 딸에게 먹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자연 그대로의 식품을 선호하는 소비자가 늘면서 별도의 살균 과정을 거치지 않은 원유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그러나 의료계와 보건당국은 비살균 우유가 일반 우유보다 영양학적으로 우월하거나 장 건강에 특별한 효과가 있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충분한 근거가 없다고 지적한다.
살균 과정은 우유에 존재할 수 있는 각종 병원성 미생물을 제거하기 위한 핵심적인 식품 안전 절차다. 아무리 건강한 가축에서 얻은 우유라도 착유와 운반 과정에서 분변이나 유두, 작업자의 손 등을 통해 세균에 오염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비살균 우유에서는 대장균 외에도 캄필로박터, 살모넬라, 리스테리아 등 여러 병원성 미생물이 발견될 수 있다. 이러한 감염은 특히 면역력이 충분히 형성되지 않은 영유아와 고령자, 임산부에게 더 큰 위험이 될 수 있다.
에밀리는 자신의 판단으로 딸이 큰 고통을 겪게 됐다며 깊은 자책감을 드러냈다. 그는 다른 부모들이 같은 일을 겪지 않기를 바란다는 뜻도 밝혔다.
브루클린에게 원유를 판매한 농장은 해당 제품을 사람이 아닌 반려동물 사료 용도로 허가받은 뒤 판매했다는 의혹 등으로 피해 가족들과 법적 분쟁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원지 기자 news21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