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도의 한 중소기업에 입사한 A씨는 최근 사수로부터 분리수거용 비닐봉투를 재사용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오염되거나 찢어진 봉투도 테이프로 붙여 쓰라는 것이었다. 대표가 비닐봉투 구매 비용을 아까워한다는 이유에서다.
직원에게 쓰는 소액 지출까지 통제하는 기업 문화가 온라인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다만 업무용 비품을 아끼거나 기존에 제공하던 복리후생을 줄이는 행위가 모두 법적 문제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11일 직장인 커뮤니티에서는 비슷한 사례가 공유됐다. 직장인 커뮤니티 리멤버에 지난 10일 올라온 글에 따르면, 정보기술(IT) 업계에 근무하는 B씨의 회사에서는 탕비실 믹스커피 구매를 두고 대표와 직원 사이에 마찰이 발생했다.
신입 직원이 커피 추가 구매를 문의하자 대표는 구매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 다 마셨느냐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이어 커피 한 상자의 가격과 개당 비용을 계산하고, 직원 한 명이 하루에 약 500원어치를 소비한다며 월간 지출을 따졌다는 게 B씨의 설명이다. 커피는 다시 채워졌지만, 탕비실에는 1인당 하루 2개로 이용을 제한한다는 안내문이 붙었다.
B씨는 회사가 최저가 비품만 구매하고 휴지도 비치하지 않아 직원들이 개인 돈으로 사서 쓴다고 전했다. 제출 문서에는 이면지를 재활용하도록 했으며 회식은 연 1회 정도 무한리필 고깃집에서 진행했다고 덧붙였다. 입사 3개월 만에 이직을 고민하게 됐다는 B씨는 회사에 대한 신뢰가 떨어졌다고 토로했다.
법적으로는 업무용 비품과 복리후생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분리수거용 봉투나 이면지 같은 소모품은 일반적으로 근로조건으로 보기 어려워, 회사가 구매 비용을 줄이더라도 그 자체로 법적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은 낮다.
반면 취업규칙이나 단체협약에 명시된 복리후생을 불리하게 변경하려면 근로기준법 제94조에 따라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과반수 노동조합이 있다면 해당 노동조합의 동의가 필요하다. 다만 별도 규정 없이 회사가 재량으로 제공해 온 커피 등 혜택은 이를 계속 제공해야 할 법적 의무가 인정되는지 별도로 따져봐야 한다.
대법원도 2002년 한국전력공사 퇴직자들의 임금 인상분 소급 지급 관련 사건에서 노동관행이 근로계약의 내용으로 인정되려면 단순히 오랫동안 반복됐다는 사실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취지로 판단했다. 해당 관행이 노사 양측에 당연히 지켜야 할 규칙으로 받아들여졌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별도 규정 없이 제공하던 믹스커피를 하루 2개로 제한한 조치만으로 법적 문제를 제기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해당 혜택이 취업규칙이나 단체협약에 명시돼 있다면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
법적 의무와 별개로, 지나친 비용 절감이 조직에 미치는 영향도 고려해야 한다. 커피 한 잔이나 휴지 한 묶음의 비용은 작지만, 직원들은 이를 회사가 자신들을 대우하는 방식의 문제로 받아들일 수 있다. 단기적인 지출 절감이 직원들의 신뢰와 인력 유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별개의 경영 과제다.
이상목 기자 mrls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