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허권자 증거 확보를 돕기 위한 '한국형 증거개시제도(디스커버리)' 확대를 놓고 반도체·통신 등 국가 핵심 산업의 기술기밀 유출 우려가 제기됐다.
제도 도입에 앞서 영업비밀 보호장치와 기업의 비용 부담을 면밀히 검증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13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최수진 국민의힘 의원은 지식재산처·법무부·법원행정처 등에서 제출받은 국정감사 자료를 분석한 결과 증거개시제도 확대에 따른 기술정보 보호와 소송비용 부담에 대한 실증적 검토가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한국형 디스커버리는 소송 당사자들이 보유한 증거를 공개하고, 전문가가 침해 의심 기업의 사업장 등을 조사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특허 침해를 입증하기 어려운 권리자를 돕는다는 취지지만, 설계·공정 정보 등 기업의 핵심 영업비밀이 외부로 유출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최근 5년간 국내 기업이 해외에서 특허소송을 당한 사례는 558건으로, 이 가운데 507건이 미국에서 발생했다. 피소 기업 중 대기업 대상 사건은 453건으로 전체의 81.2%를 차지했다.
특히 2024년 미국에서 국내 기업을 상대로 제기된 특허소송 97건 가운데 78건(80.4%)은 비제조 특허전문회사(NPE)가 제기한 것으로 집계됐다.
최 의원은 해외 NPE와 중국계 자금의 연계 의혹, 소송 과정에서의 기밀자료 유출 사례 등을 거론하며 제도 확대 시 기술 안보에 미칠 영향을 면밀히 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에서도 법원 보호명령에도 불구하고 비밀문서가 중국 소송 담당 변호사들에게 무단 전달된 사례가 확인됐다는 것이다.
정부 부처들도 제도 설계에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법무부는 법정 외 진술녹취 제도가 헌법상 재판청구권과 민사소송의 원칙에 어긋날 소지가 있다며 신중한 검토를 요청했다.
법원행정처는 제도 실효성을 확보하려면 명령 불응에 따른 패소 판결이나 소송비용 부담 등 실효성 있는 제재 수단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기업 비용 부담에 대한 분석도 쟁점으로 떠올랐다. 최 의원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일부 분쟁에서 피고 측 방어비용 중앙값이 30만~150만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지식재산처는 국내 제도 도입에 따른 비용 증가를 전문가 1인 조사 기준 약 600만원, 시장 전체 약 6억원으로 추산한 바 있으나, 이는 2019년 자료에 근거한 것이다.
기업 규모별 소송비용과 영업비밀 관리비용에 대한 최신 실증 추계는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특허권자의 정당한 권리 구제와 국가 핵심 기술 보호 사이에서 균형을 확보하려면, 제도 확대에 앞서 정보 유출 방지책과 기업 부담에 대한 객관적인 검증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 최 의원의 주장이다.
최 의원은 “증거 편재로 억울함을 겪는 특허권자를 돕고 중소기업을 구제하겠다는 취지에는 적극 공감한다”면서도 “실체가 불분명한 외국 자본이 우리 기업의 핵심 자료에 무방비로 접근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양승민 기자 sm104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