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보건당국의 지원을 받는 B형간염 백신 임상시험이 서아프리카 기니비사우에서 추진된다. 신생아 1만4000명 가운데 절반에게만 출생 직후 백신을 접종하고, 나머지 절반은 생후 6주 동안 접종을 미루는 방식이어서 윤리적 논쟁이 커지고 있다.
9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덴마크 남덴마크대 연구윤리위원회는 해당 임상시험 진행을 승인했다. 기니비사우 당국도 연구를 허가한 것으로 전해졌다.
연구는 기니비사우 신생아 1만40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절반은 출생 직후 B형간염 백신을 맞고, 나머지 절반은 생후 첫 6주 동안 접종하지 않는다.
다만 연구진은 앞서 제기된 비판을 반영해 산모의 B형간염 감염 여부를 출산 전 검사하고, 양성 판정을 받은 산모의 아기는 즉시 백신을 접종해 시험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문제는 산모가 음성이더라도 출생 후 가족이나 보호자 등을 통해 감염될 수 있다는 점이다. B형간염 바이러스는 표면에서 최대 7일간 생존할 수 있으며, 생후 1년 이내 감염될 경우 만성 감염이나 간암 등 심각한 합병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기니비사우는 B형간염 유병률이 높은 국가로, 성인의 약 18%가 바이러스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연구를 둘러싸고 덴마크 연구계 내부에서도 반발이 이어졌다. 연구 검토에 참여했던 스티그 뵈르센 한센 위원은 윤리적 문제를 이유로 사퇴했고, 다른 위원 3명도 항의 차원에서 물러났다.
한센은 “신생아들을 사실상 제비뽑기에 참여시키는 것”이라며 백신을 맞지 않는 아이들이 연구 때문에 감염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덴마크 오르후스대 헨리크 스퇴브링 교수도 이미 백신의 효과가 충분히 입증된 상황에서 일부 신생아에게 접종을 미루는 것은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연구는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미국 보건복지부 장관의 백신 정책 기조와 맞물리면서 더욱 주목받고 있다.
오랫동안 백신에 비판적인 입장을 보여온 케네디 장관은 지난달 백신 반대 성향 행사에서 이번 연구를 수행하는 덴마크 연구진을 높이 평가하며, 신생아 B형간염 백신 연구가 트럼프 행정부의 백신 정책 방향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소개했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이번 연구에 올해 예산으로 160만달러를 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퍼싱스퀘어재단과 블루벨재단도 민간 자금을 지원할 예정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케네디 장관이 궁극적으로 미국에서도 신생아 B형간염 출생 직후 접종 권고를 약화하려는 것 아니냐고 보고 있다.
필라델피아아동병원의 감염병 전문의 폴 오핏은 “이런 연구는 윤리적 문제 때문에 미국에서는 진행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개발도상국 신생아를 위험에 노출시키는 방식이라고 비판했다.
기니비사우는 당초 2027년부터 모든 신생아에게 B형간염 백신을 접종할 예정이었지만 이를 2028년으로 미뤘다. 아프리카 질병통제예방센터도 이번 연구에 반대 입장을 밝혔으며, 세계보건기구(WHO)는 신생아의 출생 직후 B형간염 백신 접종을 권고하고 있다.
연구진은 백신 접종과 사망률의 연관성을 비롯해 피부질환과 신경발달 관련 결과 등을 살펴볼 계획이다. 다만 반대 측은 예방 효과가 확립된 백신을 일부 신생아에게 의도적으로 늦추면서 불확실한 가설을 검증하는 것은 정당화하기 어렵다고 지적하고 있다.
서희원 기자 shw@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