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SJ ‘저채용·저해고’ 현상 분석
미국 명문 프린스턴대에서 화학공학 박사 학위를 받은 30대가 2년 동안 2300곳이 넘는 일자리에 지원하고도 취업하지 못해 눈길을 끌고 있다. 기업의 채용 위축에 인공지능(AI) 확산까지 겹치면서 고학력 청년층도 구직난을 겪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8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 출신 잭 와이스는 2024년 프린스턴대에서 화학공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2300곳이 넘는 일자리에 지원했지만 아직 직장을 구하지 못했다. 그는 자신을 “부모 집 지하실에 사는 또 한 명의 실업자”라고 표현했다.
와이스는 라이스대를 최우등으로 졸업한 뒤 2018년 프린스턴대 박사 과정에 진학했다. 얼음 형성에 관한 그의 연구는 2024년 노벨 물리학상 관련 발표 과정에서 노벨위원회가 기계학습의 과학적 활용 사례로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처음에는 기업 연구직과 국립연구소의 박사후연구원 자리를 노렸다. 그러나 2024년 지원한 로스앨러모스 국립연구소는 채용 상태를 장기간 '검토 중'으로 표시하다 올해 들어서야 다른 지원자를 채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후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등으로 지원 분야를 넓혔고, 냉동 크랩케이크를 판매하는 회사의 식품 조리직에도 지원했지만 답변을 받지 못했다. 어머니 홀리 카베스는 아들의 지원서를 살펴본 뒤에도 내용에 문제가 없어 보인다며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채용 기회를 놓친 일도 있었다. 컨설팅 업체 맥킨지는 72시간 안에 가상 숲 생태계를 구축하는 컴퓨터 게임 과제를 제시했지만, 와이스는 당시 48시간 동안 배낭여행을 하느라 이메일을 제때 확인하지 못했다. 뒤늦게 과제를 마쳤지만 결국 탈락했다. 맥킨지 측은 일정상 어려움이 있다면 기한 연장을 요청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올해 1월에는 AI 학습용 데이터를 만드는 스타트업 머코어에서 시간당 70달러를 받고 화학공학 관련 질문을 작성하고 AI 답변을 평가하는 일을 시작했다. 그러나 일감이 줄면서 지난 3월 중순 계약 종료를 통보받았다.
WSJ는 와이스의 사례가 미국 고용시장의 '저채용·저해고' 현상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기업들이 신규 채용을 줄이면서 기존 직원들은 직장을 유지하지만, 실업자는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8월 갤럽 조사에서는 미국인 가운데 지금이 좋은 일자리를 찾기 좋은 시기라고 답한 비율이 34%에 그쳤다.
장기 실업 문제도 심화하고 있다. 올여름 전체 실업자 가운데 27주 이상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사람의 비중은 코로나19 팬데믹 시기를 제외하면 10여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AI 확산도 재취업과 신규 채용에 부담을 주는 요인으로 꼽힌다. 채용 플랫폼 그린하우스 조사에서는 미국 구직자의 60% 이상이 지난 1년 동안 사람의 개입 없이 진행되는 AI 면접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와이스는 프린스턴대 동문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결국 회사 채용 사이트를 통해 지원하라는 답을 들었다며, 지원서가 다시 묻힐 것이라는 생각에 “심장이 내려앉는다”고 토로했다.
그가 박사 학위를 받은 뒤 2년 동안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50차례 넘게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금융시장이 호황을 누리는 동안 구직 시장에서는 어려움을 겪은 셈이다.
와이스는 다음 달 로스쿨 입학시험인 LSAT에 응시하고, AI를 활용해 외래 침입 잡초를 제거하는 레이저 드론을 설계하는 등 창업도 시도하고 있다. 부모 집에서 생활비를 아끼며 투자도 이어온 그는 “주식이 계속 오르는 건 좋지만 상황이 훨씬 더 이상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이상목 기자 mrls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