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노벨 과학상, 내년을 기약하며

박종구 성균관대학교 산학협력 전담 교수
박종구 성균관대학교 산학협력 전담 교수

올해도 기다리던 노벨 과학상 수상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올해 노벨 과학상은 빛으로 뇌 속 신경세포를 제어하는 광유전학 기술을 발전시킨 3명의 미국과 독일 과학자, 남극의 거대한 얼음덩이로 중성미자의 측정을 가능하게 한 미국의 물리학자, 유기합성에서 비선형 효과와 비대칭 자기촉매 작용을 발견한 프랑스와 일본 과학자에게 돌아갔다.

빛을 이용해 특정 신경세포가 행동·감정·기억에 미치는 영향을 밝힐 수 있게 한 기술, 얼음덩이로 만든 아이스큐브(IceCube)라는 중성미자 측정 도구, 같은 분자 형태를 가지면서도 상반된 형상을 갖는 카이랄성을 극복하고 원하는 형상을 가진 분자의 합성 수율을 극적으로 높이는 방법 등 새로운 수단과 방법을 개발한 과학자들이 영예를 안았다.

이들이 거둔 과학 성과는 실제로 활용돼 치매·파킨슨병 신약 개발, 우주를 보는 새로운 눈, 분자 합성 분야의 100년 난제 해결 등에 실제로 활용되는 성과를 낳고 있어 인류의 복지와 발전에 공헌한 성과를 인정하는 노벨상 취지에 부합한다.

그렇다면 노벨 과학상은 과학 성과에 주는 상일까 아니면 기술 성과에 주는 상일까. 과학과 기술의 경계가 모호해진 환경에서 이분법적인 질문이 우습게 들릴 수 있다. 인류의 복지와 발전에 공헌한 성과라면 노벨이 발명한 다이너마이트가 그랬듯이 기술 혹은 산업적 성과가 포함될 수밖에 없을 것이므로 던지는 질문이다. 물론 대답은 인류의 복지와 발전에 공헌한 기술적, 산업적 성과의 단초가 된 창의적 과학 성과에 주어지는 상이다.

우리는 '과학기술'이라는 용어를 자연스럽게 사용한다. 하지만 '과학'과 '기술'은 엄연히 다른 영역이다. 과학의 출발점은 '호기심'이며 결과는 새로운 '지식'의 획득이다. 기술의 출발점은 '필요' 혹은 '수요'이며 결과는 새로운 '제품'의 출현이다. 과학의 대상은 우주를 포함한 자연이며 기술의 대상은 시장이다. '과학기술에 투자한다'라고 하면 무엇이 출발점이고 대상이며 추구하는 결과는 무엇일까. 우리가 바라는 노벨 과학상이 나오지 않는 이유를 어쩌면 우리가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과학기술'이라는 용어에서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과학기술은 영어로는 '과학(science)'과 '기술(technology)'로 구분되며 우리처럼 과학기술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나라에서도 '과학·기술'로 의미를 구분하고 있다. 노벨상 수상자를 많이 배출한 나라는 공통으로 모두 과학 전통이 깊고 오랫동안 과학 탐구에 투자해 왔다.

우리나라는 과학기술에 본격 투자하기 시작한 지 30년이 넘었다. GDP에서 과학기술 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나라이기도 하다. 그중 '과학'에 대한 투자는 얼마나 될까. 과학기술에 투자한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기술(개발) 영역에 중점을 두지 않았는지, 과학을 기술처럼 생각하지 않았는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만약 그렇다면 과학 탐구의 여건이 성숙되기 어려운 것은 당연한 결과일 것이며, 세계가 주목할 새로운 과학 지식을 만들어내지 못한 것 또한 당연할 것이다.

이제는 획기적인 과학 성과를 창출할 방안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때다. '과학'과 '기술'이 영역별 특성을 유지하면서도 서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정교한 정책을 펼쳐야 한다. 특히 과학 영역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하고 기술 영역과의 투자 균형을 모색해야 한다. 첨단기술(수단)을 이용하지 않고 과학 탐구를 하기 쉽지 않고 새로운 지식 없이 새로운 첨단기술은 탄생하지 않는다. 우리는 혁신경제를 떠받칠 새로운 지식을 계속해서 공급해야 하므로 과학, 즉 기초연구는 과학기술 정책에서 선택이 아닌 필수다. 미래를 바라보는 혜안으로 과학기술 정책을 재정비한다면 가까운 장래에 반가운 소식을 듣게 될 것이다.

박종구 성균관대 산학협력 전담 교수 jkptl@skku.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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