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생태계 복원 시급하다]<중>한국벤처 20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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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한국 벤처는 IMF 위기를 극복하고 제2 한강의 기적을 잉태했다. 벤처기업협회가 주도하여 만든 벤처기업특별법이 창업을 촉진했고 ㈜코스닥이 회수 시장을 담당했다. 당시 이스라엘은 한국의 벤처기업특별법과 코스닥을 진심으로 부러워했고, 중국은 한국의 벤처 정책을 벤치마킹하여 벤처 육성에 돌입했다. 세계 최고의 벤처 생태계를 만든 1차 벤처 정책의 재조명이 제 2 벤처 붐 정책의 필수 과목이 아닌가 한다.

㈜코스닥은 일본의 마더스 유럽의 노이에 보다 3년 앞선 1996년 독립 주식회사로 출범했다. 불과 5년 만에 거래 금액에서 전통의 코스피를 추월하고 신규 상장사가 188 개로 16 개의 코스피를 압도했다. 코스닥은 거래량과 시가 총액에서 미국의 나스닥에 이은 세계 2위의 신시장으로 부상하여 한국 금융 역사에 한 획을 그었던 것이다. 코스닥이 벤처 투자의 회수 시장으로 역할을 하면서 벤처와 엔젤 투자는 더욱 활성화되어 당시 벤처투자는 2조원, 엔젤 투자는 5000억에 달했고 이는 국내총생산(GDP)대비 미국에 뒤지지 않는 규모였다. 민간 주도로 고 위험 고 수익의 신 금융 시장이 구현된 것이었다.

1997년 세계 최초로 만든 벤처기업특별법은 50년간 자연 성장한 미국과 달리 압축 성장의 길을 택한 한국의 벤처 육성 대안이었다. 외국의 제도를 그대로 벤치마킹한 과거 정책들은 사막의 나무심기와 같이 한국의 풍토에 맞지 않았다. 성공적인 제도는 국가별 특수 상황를 고려해야 하기에 모든 국가 정책은 현지화가 필수적인 요소다. 인력, 자금, 입지 등에 대한 종합적 정책 지원을 위한 제도로서 당시 벤처인들의 애로사항을 반영한 한국만의 작품이었던 것이다. 벤처 빌딩 제도는 정부 지원없이 쇠락한 구로공단을 G밸리로 환골탈태시켰고, 실험실 창업 제도는 공공기술 사업화의 새로운 길을 열었다. 모두가 세계 최초의 한국의 발명품이고, 대한민국의 중요한 무형 수출품이 되었다.

주식옵션 제도는 벤처 기업의 성장에 필요한 인력 공급을 주도했다. 코스닥 활성화와 연계하여 주식 옵션제도는 벤처 대박 신화를 만들었다. 그 결과 대기업, 대학, 연구소, 언론, 공무원 등 우수인력들이 대거 벤처에 유입되었다. 또한 주식옵션은 창업보육센터, 대학과 연구소 등에도 확대되어 각 기관들이 벤처 창업 지원을 촉진시키는 큰 역할을 담당했다.

인케(INKE)는 1998년 벤처 세계화를 위한 대안으로 해외 거주 한인벤처들과의 연계 네트워크로 만들어졌다. 벤처의 해외 진출시 현지화를 위한 협력 대안인 것이다. 벤처 리더스 클럽은 벤처와 금융과 언론과 정부의 소통 창구로서 개방된 네트워크다. 창업보육 센터와 테크노파크는 실험실 창업과 연계된 혁신 클러스터들로 연동 설계되었다.

코스닥이 선도 벤처를, 벤처기업특별법이 창업벤처를 지원한다면 중간 회수 시장을 담당하는 기관으로 벤처기업협회 투자로 2000년 설립된 것이 기술거래소다. 이는 IP(지식재산권)과 M&A(인수합병)을 목표로 하는 세계 최초의 개방 혁신 거래소였다. 이를 벤치마킹한 중국의 기술거래소는 현재 미국 외에서는 가장 활발한 M&A거래 기관으로 성장했다. 미국의 창업을 뒷받침하는 엔젤 투자는 M&A라는 중간회수 시장과의 선순환을 통하여 발전된 것이다. 그러나 자연발생적 M&A시장은 미국 외에서는 성공 사례가 없었다. 제도에 기반한 M&A시장인 기술거래소를 대안으로 만든 이유다.

2001년 한국이 이룩한 세계 최고 수준 벤처 생태계의 복원이 2차 벤처 붐의 전제조건이다.

이민화 창조경제연구회 이사장, 벤처기업협회 초대회장 mhleesr@gmail.com

[벤처생태계 복원 시급하다]<중>한국벤처 200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