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해외 투자와 기술 유출

최근 국내 전자부품 업계에 기술 유출이 이슈다. 국정감사 때 연례행사처럼 발표되는 통계 때문이 아니라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발언 때문이다. 백 장관은 지난달 반도체·디스플레이 업계 간담회에서 기술 유출을 이유로 들며 해외 투자를 재고해 달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그는 간담회 후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도 “우리가 중국에 공장을 지었기 때문에 액정표시장치(LCD) 산업이 따라잡혔다”고 말했다. 해외 공장을 짓게 되면 기술이 유출되고, 실제 LCD 제조 기술 유출이 그랬음을 전제로 한 발언이었다.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 장관 논리대로라면 해외에 진출한 기업은 모두 기술 유출 문제를 겪어야 한다. 기술을 도용 당해서 시름시름 앓거나 문을 닫아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삼성전자나 하이닉스는 중국에 반도체 공장을 세우고도 세계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국내 디스플레이 업계도 일찍 중국에 진출, 과실을 거둔 바 있다.

산업부 장관이 기업의 해외 진출 필요성을 모를 리 없을 것이다. 무지에서 나온 발언이라기보다 주무 부처 장관으로서 중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보복에 대한 우려와 대비, 또 국내 투자와 일자리 확대를 당부하는 과정에서 나온 발언으로 이해하고 싶다. 그러나 기술 유출을 이유로 꺼내든 점이 오히려 의심과 반감을 낳았다.

[프리즘]해외 투자와 기술 유출

보호해야 할 기술이 있다면 누구보다 해당 기업이 적극 나설 것은 상식이다. 외부 어느 누구보다도 기업 스스로가 더 주의하고, 틈이 새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 쓰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정부가 발생할지 모를 기술 유출이 걱정돼 해외 투자를 간섭하기 시작한다면 이는 기업 자율권 침해이자 통제 문제가 된다. 그동안 해외에 진출한 기업, 해외에 나갈 중요 기술 기업을 앞으로는 모두 규제하겠다는 것인가. 이는 현실상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기술 유출은 해외 투자 봉쇄로 차단되는 문제가 아니다. 얼마나 꼼꼼히 보안 대책을 세우는 가, 지식재산권은 어떻게 보호 받을 것인가가 중요하다. 기술 유출의 주요 경로인 인력 이동이나 해킹 등은 이미 국경을 가리지 않는다. 정부가 기업 길들이기나 다른 목적을 염두에 두고 기술 유출 문제를 정략 차원에서 이용하는 것이 아니길 바란다.

윤건일 전자/부품 전문기자 beny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