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교수포럼의 정책 시시비비]<100>언택트 시대, 규제혁신 패러다임 새로 쓰자

[ET교수포럼의 정책 시시비비]<100>언택트 시대, 규제혁신 패러다임 새로 쓰자

2018년 말 규제 혁신이 단연 화두이던 때의 기억이다. 당시 이낙연 총리는 대전 소재 한 정부출연연구기관을 찾아 '규제 혁파를 위한 현장 대화'를 주재했다. 이날 현장 대화에는 산업통상자원부를 비롯한 7개 부처 차관급이 참석했고, 규제 혁파에 대한 정부의 의지를 가감 없이 체감할 수 있었다.

지난해 초에는 '한국형 규제 샌드박스 제도'가 정립됐다. 정보통신기술(ICT)융합·산업융합·금융혁신·지역혁신 등 4개 분야에서는 외국에 비해 한 걸음 더 나아간 규제 신속 확인, 임시허가, 실증특례 등 제도가 시행됐다. 지금 규제 혁파와 규제 샌드박스를 통한 개선 성과가 확산되고 있음도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지금 전문가 사이에서는 좀 더 근본적인 규제 혁신을 제안하는 목소리가 있다. 핵심은 이른바 '언택트(비대면)' 시대 우리 규제정책 방향을 묻는 것이다.

실상 규제는 일종의 규범이나 기준, 요즘 유행하는 용어인 '노엄(Norm)' 또는 '노멀(Normal)'과도 유사하다. 기업 활동이나 소비자 후생 측면의 건전성을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도 있다. 제도나 정책을 시행하기 위한 바람직한 대전제였거나 무엇인가를 타당하거나 '정상적'이라고 판단하는 기준이기도 했다.

그러나 어떤 정상인 것도 시간이 지나고 기술이 바뀌고 인식이 변하고 경제가 성장하고 사회가 진화하면서 과도한 것, 효율성을 떨어뜨린다. 자칫 함정이 되고 근시안을 만들며, 심지어 기존의 누군가에 특혜를 주는 비정상인 것이 되기도 한다. 이런 때 기업에는 장벽이 되고, 소비자에겐 비용과 불편을 전가하는 것이 된다.

실상 이것은 오늘날 혁파 대상으로, 우리가 부르는 그런 묵은 규제의 공통된 단면이다. 또 미래에 우리 발목을 잡을 그런 규제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시대 변화가 만드는 규제는 무엇인가 묻고 있다. 지금 당장은 정상이고 당연하고 그러려니 싶지만 결국 바뀐 세상에서 우리 모두의 혁신을 막을 그런 규제는 무엇일까 물어 왔다.

전문가들은 그것을 바로 언택트 사회에서 예전의 노멀이 만드는 규제라고 본다. 사례는 셀 수도 없겠지만 비근한 예가 바로 물리적인 공간에 관한 것이다. 과거 우리는 무엇인가를 수행하는 조건으로 공간을 필수조건이라 생각했다. 심지어 그것은 어떤 특정한 용도를 위해 온전히 유별난 공간만을 의미하기도 했다.

우리 각자 한번 판단해 보자. '다른 업무를 수행하는 부서와 고정된 벽체로 구분되고 출입문은 별도로 있는 독립된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는 조건은 어떤가. 거기다 '면적은 기자재를 구비하고 해당 업무를 수행하는데 적절한 크기'라고 규정하고 기준을 삼는 건 또 어떤가. 그동안 우리가 개방형 혁신 시대라고 외쳤지만 정작 시설을 갖추고 그 일을 전담으로 하는 누군가가 그 공간 내에서 업무를 봐야만 '노멀'인 그런 시대 정신 속에 우리는 아직도 살고 있다.

이대로라면 앞으로 다가올 언택트 시대에 무엇무엇 전용이라는 팻말을 붙인 채 따로 구별해 놓은 공간과 시설과 장비가 도대체 얼마나 될지 상상하기도 어렵다. 바로 이런 것이 우리가 지금 고심해 봐야 할 규제 아닌가 한다. 미래 사회에 불필요한, 그러나 과거에는 당연시하던 것들이 진정한 규제 혁신 대상이어야 한다. 찾아보면 이런 것이 어디 한두 개뿐이겠나.

그동안의 많은 성과에도 우리는 아직 우리 자신을 규제 선진국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기 주저할지 모른다.

언택트 시대에서 규제만큼은 선도 국가가 될 수 있다. 언택트 규제를 규제 혁신 과제로 삼자. 이것이 진정한 선제의 규제 혁신 아니겠는가. 언택트 규제 혁신의 승자가 되자. 세계가 부러워할 혁신 국가가 되자.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