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간판기업 소니의 이데이 노부유키 최고경영자(CEO) 겸 회장(67)이 실적 부진을 이유로 물러난다. 세계 가전업계 최강자였던 소니가 ‘이빨 빠진 호랑이’라는 평가를 듣고 있는 현실에서 그의 퇴장은 씁쓸하다. 퇴진 발표 당일 소니 주가가 오른 것을 보더라도 그는 역대 선배 CEO들과는 분명 달랐다.
물론 이데이 회장에게도 화려한 ‘봄날’은 있었다. 지난 95년 상무에서 일약 사장으로 임명된 그는 ‘디지털 드림’을 내세우며 침체된 소니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영어와 프랑스어에 능통하고 사교적인 것으로 알려진 그는 가장 일본적이지 않은 일본 경영인으로도 꼽혔다.
사장 취임시 “이부카-모리타-오가로 이어져 온 소니 CEO 선배들의 업적을 존경하지만 결코 참고하지는 않겠다”면서 자신만의 경영 스타일을 강조했다. 당시 소니는 3000억엔의 적자를 기록하며 비틀댔다. 하지만 그의 취임 후 바이오PC, 베가TV 등 신제품을 속속 히트시키며 3년 만인 98년 흑자(2200억엔)로 전환됐다.
그는 이후 디지털 콘텐츠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게임기기, 영화산업 등에 적극 진출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양면에서 세계 IT산업의 패권을 노린 야심찬 경영인이었다. 비록 활발한 영토 확장, 과도한 투자로 막강했던 가전 부문 경쟁력을 잃게 만들었다는 비난도 받았지만 ‘셀’ 반도체, 차세대 게임기 ‘PSP’ 등을 출시해 반격의 칼날을 갈고 있던 차였다.
그러나 현실은 냉정했다. 좀처럼 실적 개선 조짐이 보이지 않자 결국 CEO 자리에서 밀려나고 말았다. 디지털가전·디지털콘텐츠·소프트웨어 중심의 ‘종합 IT업체’로서 소니가 성과를 내기 전까지 그는 실패한 경영인으로 남을 것 같다.
현재의 하이테크 경제 체제는 CEO들에게 많은 것을 요구한다. ‘혁신적인 경영과 미래 제시’는 성공한 CEO의 덕목이지만 이를 지탱하는 기본은 ‘실적’이다. 그런 점에서 이데이 회장은 얼마 전 물러난 HP의 칼리 피오리나 CEO와 닮았다. 둘 다 화려했지만 돈을 버는 데는 실패했다.
사실 그의 실각은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올해가 회장 마지막 임기였고 67세라는 나이가 부담스럽기도 했다. 다만 그가 심혈을 기울여 온 소니의 미래상이 보일 만한 시점에서 그만둔다는 게 아무래도 여운으로 남는다.
국제기획부 명승욱기자@전자신문, swm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