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AI 패권 시대, 과학기술 인재 확보 전략의 성공 조건

김정호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기 및 전자공학부 교수
김정호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기 및 전자공학부 교수

최근 구글의 제미나이와 퍼플렉시티를 직접 사용해 보며 인공지능(AI) 기술이 얼마나 빠르게 진화하고 있는지 실감하고 있다. 자료 검색부터 논리적 정리, 발표용 이미지 생성까지 수초 만에 해결해 준다. 근거가 없거나 틀린 정보를 생성하는 오류인 할루시네이션(환각) 현상은 크게 줄었고, 나의 의도를 파악해 스스로 업무를 정리해 주는 단계에까지 진화했다.

이제 AI는 초거대 언어모델을 넘어 영상과 음성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멀티모달' 시대로,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대리 AI(Agentic AI)'로 진화하고 있다. 구글 등 글로벌 플랫폼 기업이 투자를 확대하고, 대규모 AI 데이터 센터 구축과 이에 필요한 그래픽처리장치(GPU),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AI 반도체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등 바야흐로 총성 없는 'AI 패권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이러한 시점에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지난달 발표한 과학기술 인재 확보 전략은 매우 시의적절하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등 4대 과학기술원을 AI 전환(AX) 허브로 지정하고, 이공계 대학원생 장학금 수혜율을 높이고, 연구생활장려금을 확대 지원하며, 국가과학자를 선정해 파격 대우하겠다는 계획은 연구 현장에 큰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된다. 해외 우수연구자 유치 목표를 세운 것 역시 국내 인재 유출 증가와 기업·대학 인재 확보 경쟁 심화를 고려할 때 반드시 필요한 조치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러한 전략이 실질적인 AI 패권 확보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AI 기술 특수성과 이공계 생태계 전반을 아우르는 과감하고 지속적인 실행이 뒷받침돼야 한다.

무엇보다 AI 분야는 현재 초거대 언어모델 경쟁을 따라가는 수준을 넘어, 멀티모달과 에이전틱 AI 생태계를 선점해야 한다. 텍스트뿐만 아니라 이미지와 동영상을 생성하는 기초 AI 모델 개발이 시급하며, 특히 제조업 강국인 대한민국 강점을 살려 로봇·센서·제조 데이터와 AI가 결합한 '피지컬 AI' 분야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에 국가적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물론 세계 최고 수준을 지향하되 안전하고 신뢰성 있는 모델을 만드는 것 또한 중요하다.

이를 뒷받침할 인프라 확충과 인재 양성도 획기적으로 늘려야 한다. 현재 계획된 26만대 규모의 GPU 인프라는 출발점으로 충분하지만, 연구자 누구나 제한 없이 실험할 수 있도록 미래에는 100만대 규모의 압도적인 투자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인재 양성 역시 AI 학부 및 석·박사생 1000명 이상에게 학비와 생활비 걱정 없이 연구에만 몰입할 수 있도록 파격적인 지원을 제공해야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국가대표 AI' 인재를 길러낼 수 있다.

더 나아가 전체 이공계 생태계를 위한 안전망도 촘촘해져야 한다. 현장 연구자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졸업 후의 불확실한 미래다. 신진연구자들이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는 대학, 출연연 등 양질의 일자리를 대폭 확충하고, 기업과 연계한 채용 확약형 트랙을 늘려야 한다.

또 AI 시대 경쟁력은 결국 탄탄한 기초과학과 수학적 원리에서 나온다. 유행을 좇는 단기 연구에만 예산이 집중되지 않고, 실패 가능성이 있더라도 도전적인 기초연구를 긴 호흡으로 지원하는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 이를 통해 노벨상급 혁신적인 연구 성과도 기대할 수 있다.

정부의 강력한 추진 의지와 파격적인 지원이 더해질 때, 대한민국은 AI 강국으로서의 미래를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 정부의 이번 발표가 구체적인 예산 확보와 실행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지금의 과감한 실행이 향후 10년 대한민국 기술 주권을 좌우할 것이다.

김정호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기 및 전자공학부 교수 joungho@ka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