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피플] 이은석 넥슨 실장

디지털 기술은 문화와 예술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특히 인터랙티브 미디어가 미디어 예술로 대접받기 시작하면서 게임도 아슬아슬한 경계선을 걷기 시작했다. 천대받던 서브컬처에서 사랑받는 대중문화로, 다시 놀라운 예술로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콘텐츠피플] 이은석 넥슨 실장

게임 개발자들이 참여한 실험적 기획전을 전시 중인 313 아트 프로젝트 갤러리에서 이은석 실장을 만났다. `보더리스(Borderless)`가 테마인 이번 기획전은 넥슨의 게임 `마비노기` 시리즈를 모티브로 한 다양한 장르의 작품 10여 편이 전시됐다. `마비노기 영웅전`의 총괄 디렉터인 이은석 실장을 비롯해 김호용, 한아름, 이진훈, 김범, 이근우 등 넥슨 데브캣스튜디오 소속 개발자 6인이 참여했다.

카이스트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이 실장은 이번 작업 전까지 단 한 번도 붓을 잡아본 적이 없었다. 공대에 디자인학과가 설치된 학과 특성상 그는 아티스트보다 엔지니어에 더 가까운 사람이다. 디지털 콘텐츠에 대한 관심은 높았어도 순수 예술로서 창작활동을 해 본 적은 없었다.

“애니메이션학과나 디자인학과 출신은 있어도 순수 미술 전공은 한 명도 없습니다. 이번 전시 전에는 붓을 단 한번도 잡아보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죠.”

처음 전시회 제안을 한 것은 김정주 엔엑스씨(NXC) 대표였다. 김 대표는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수업을 들을 만큼 전시에 관심이 많았고 `엔엑스 아트 랩`이란 실험적 아트 프로그램을 사내에 신설했다. 이번 전시에도 작업 진행부터 갤러리 오픈 전날 최종 리허설까지 직접 챙겼다.

지난해 여름 엔엑스 아트 랩 1기가 출범됐고, 이 실장이 리더를 맡아 방향을 조율했다. 삼성동 회사 주변에 작은 공방을 마련했다. `개발자` 이름표를 떼고 `작가`가 됐다.

“멤버들에게 무엇보다 작가로서 자기 자신의 목소리를 담아야 한다고 강조했죠. 게임 개발에서는 하기 어려운 `고집`을 담아야 한다고요. 게임개발은 공동 창작 작업이기 때문에 양보와 조율이 더 중요합니다.”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은 물론이고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경계선에 대한 재치있는 표현들이 전시됐다. 캔버스는 컴퓨터 모니터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공간을 확장했다. 회화, 조각 같은 순수미술작업부터 키넥트, 픽셀아트, 컴퓨터 및 신형 디스플레이가 총동원됐다. 단 한 번도 실재하지 않았던 판타지 세계 속 인물들이 유화물감으로, 조각으로, 설치 작품으로 생생하게 뛰어나왔다. 반면 실재하는 사람이 카메라와 동작인식 시스템 키넥트를 통해 가상세계 속 `아바타`가 됐다.

“우리는 그동안 가상세계 미술작업을 해왔던 사람들인데 오프라인으로 그 가상세계의 아트작업들을 재현하는 데 의미를 뒀습니다. 전시라는 것은 그 당시에만 보고 느낄 수 있고 디지털처럼 무한 복제가 불가능한 것에 그 의미가 있죠.”

붓이나 물감이 필요 없는 가상의 컴퓨터 그래픽 작업이지만 디자이너의 수작업은 실재에서 이뤄지는 노동이다. `버추얼 핸즈`라는 작품에서는 투명한 디스플레이 위로 디자이너의 손이 움직이면서 그림이 나타났다 사라져갔다. 작품 곳곳에 실재와 가상이 겹치고 경계가 흐릿해졌다. 무엇이 게임이고 무엇이 예술이냐는 질문도 모호해졌다. 그 대답은 각자의 몫이다.

이 실장은 `작가`라는 전시회 표현이 어색하다고 털어놓았다. “멤버들이 직장인으로 일하는 게 훨씬 편하다고, 그래서 다시는 힘들어서 못하겠다고 해요.”

그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분명히 설명하기 어렵지만 이번 작업을 하면서 많이 성장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명희기자 noprint@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