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贊 게임셧다운]수출·고용으로 치장 말아야

복잡하고 많은 규제는 경제 후진성의 상징이다. 이는 개발 시대에 관료들이 가지고 있던 권력을 내려놓지 못하면서 철폐 시 발생 가능한 과정적 혼란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목적이 컸다. 그나마 지금이라도 규제 철폐를 위한 정부의 움직임이 있으니 뭔가 변화를 기대할 수 있을 것 같다. 많은 기업인이 혜택을 입고 새로운 기업도 다양하게 탄생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贊 게임셧다운]수출·고용으로 치장 말아야

그런데 한 가지 우려되는 것이 있다. 불필요한 규제를 철저히 구분해 내기가 그리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대통령 한마디에 1년 또는 몇 달도 되지 않아 필요한 규제가 사라지고 이로 인해 부작용이 심해지고 피해자가 생긴다면 이는 사회적으로 큰 비용을 유발한다. 특히 이러한 피해의 대상이 청소년이라면 더욱 우려가 크다.

우려의 대상이 되는 이른바 철폐 대상으로 부상한 규제 중에 ‘게임 셧다운제’가 있다. 16세 미만의 청소년에게 0시부터 6시까지 게임 접속에 제한을 두는 규정이다. 개인의 자유 침해로 헌법 소원도 되고 입법 취지처럼 청소년 수면권과 연관이 없다고도 하고 청소년 관련 기금에 눈독을 들인 간접 조세화를 목적으로 한 것이라고도 한다. 청소년 게임 중독의 통계가 과장됐다고도 한다.

가르치는 학생들 중에는 청소년기부터 게임에 깊이 빠져 고통받는 사례를 종종 본다. 근래에도 어느 학생은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해 취업을 포기하고 대학원에서 공부에 집중하면서 치료를 받아보려 안간힘을 썼고 입원까지 몇 차례 했으나 결국 벗어나지 못하고 그나마 의지하던 나와도 연락을 끊었다. 학교에 있으면 이와 유사한 사건을 종종 경험한다. 당연히 그 부모님 또한 엄청난 고통을 겪는다.

이 친구가 담당 의사에게 게임 중독 관련 치료 통계를 요청해보겠다고 한 적이 있다. 이 분석을 석사 논문으로 써보고 싶어서였다. 환자 자료라 불가능하단다. 그런데 자신이 보기에 게임 회사들은 치료비 일부를 부담하면서 통계도 가져가는 것 같더란다. 사실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청소년의 게임 중독 예방에 그토록 인색한 게임업체들이 그 통계를 가져간다면 어떻게 쓰일까 싶었다.

전통적으로 기업은 사회에 가치 있는 생산물 제공만 한 게 아니라 오염과 같은 부정적인 부산물도 남겨왔고 근래 들어 자신이 벌여 놓은 것은 자신이 책임지는 ‘기업시민(Corporate Citizenship)’의 개념으로 넘어가고 있는 지 오래다. 거대해진 국내 게임회사들도 사회적 책임 운운하며 이른바 CSR 활동을 하고 있단다. 그런데 내 학생들은 여전히 어릴 때부터의 중독에 고통받고 있고 가족들은 괴로워하고 있다.

미국·영국 등 선진국은 청소년 보호가 사회적 책임 우선순위의 가장 위쪽에 있다. 지역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밤 9시나 10시 이후엔 어른 동행 아니면 바깥에 다니지도 못한다. 청소년들에게 술, 담배, 카지노, 마약 등 그 어느 중독성 있는 것을 제공할 시에는 상상도 못할 심한 엄벌에 처한다. 그런데 우리는 산업 발전이라는 개도국에게나 걸맞은 명분 하에 청소년에게 총과 칼로 사람을 죽이는 훈련에 노출시키고 중독시켜 왔다. 영화와 다르게 등급 판정에도 별개의 기준을 적용했다. 게다가 더욱 황당한 건 셧다운제를 없애자는 측의 일부는 중증 중독은 3% 이내인데 중독률이 15% 등으로 경증 중독까지 포함되었다는 게 과장이라거나 중독률이 감소하고 있다는 표현을 남의 얘기처럼 하는 경우다.

진정한 선진국이 되려면 단 한명의 희생자가 예상돼도 그 사업은 확실한 해결책을 찾을 때까지 재고돼야 한다. 그 한 명이 청소년이라면 더욱 그렇다. 외국의 IT 포럼에 갔을 때 몇몇 유명 인사들이 왜 한국 정부와 사회는 다수의 청소년이 그렇게 폭력적이거나 중독성 있는 온라인 게임을 하도록 그냥 내버려두냐는 질문에 당황한 적이 있다. 차마 고용 창출과 수출 증대를 위해서 그런다더라고 대답할 수는 없었으니까.

김병초 한국외국어대 교수 bckim@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