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정현의 블랙박스] 게임업계 이순신을 기다리며

난세에 영웅이 난다. 국가가 위기에 처하면 국민은 영웅 출현을 기대한다. 그 사람이 전쟁 영웅일 수도, 문화 영웅일 수도, 때로는 산업 초석을 세운 혁신가일 수도 있다.

전쟁 영웅 중 백미는 역시 이순신이다. 임진왜란 당시 부산포에 상륙한 일본군은 파죽지세로 도성으로 진격했다. 일본군 선봉이 부산에 상륙한 것은 1592년 4월 13일, 이후 5월 3일 한양이 함락되기까지 단 18일이 걸렸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거리를 420㎞라고 하고 중간에 조선군과 전투로 5일을 허비했으니 실제 행군 시간은 13일. 일본군은 하루에 32㎞ 이상을 행군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하루 32㎞를 성인 평균 시속 4㎞로 나누면 8시간이 나온다. 임진왜란 직전 전국시대에 '아시가루'라 불리던 일본군 보병은 10kg 정도 무기와 비품을 소지하고 있었다. 일본도나 조총이 약 4kg, 철제갑옷이 약 4kg, 그리고 주먹밥, 물통 등 비품이 2kg로 추정되는 결코 가볍지 않은 무게였다. 10kg 군장에 소풍 가는 것도 아닌 전투상황에서 질풍처럼 한양으로 진격했다는 말이 된다.

만일 이 상황에서 바다의 이순신이 적의 식량 보급로를 차단하지 않았다면 병자호란처럼 선조가 포로가 되는 상황이 벌어졌을 지도 모른다.

이런 절체절명 순간에 등장한 이순신이기에 감동은 크다. 그리고 마지막 전투에서 전사했기에 아쉬움과 그리움은 더욱 크다.

위정현 중앙대 교수
위정현 중앙대 교수

이순신과 달리 현대의 영웅, 특히 기업의 영웅은 자신 목숨을 버리는 희생까지 강요받지 않는다.

그럼에도 '동물적 본능(animal spirit)'이나 이기심에 충실한 '자본가'를 넘어 사회적 역할을 하는 기업가의 메시지는 감동을 준다.

대표적 예가 워런 버핏이다. 그는 2011년 뉴욕타임즈에 보낸 '슈퍼부자를 아끼는 것을 그만두라'는 기고문에서 부자 증세를 주장했다. 슈퍼리치 버핏이기에 그의 주장은 더 큰 감동과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우리 게임업계에는 아쉽게도 영웅이 없다. 산업 초석을 세운 혁신가는 여러 명 있지만 존경 받지 못한다. 그들은 큰돈을 벌었지만 직원은 그냥 직원일 뿐이고, 그 돈을 벌게 해 준 게이머들은 여전히 사회적으로 '시민권을 받지 못한 게이머'일 뿐이다.

최근 게임산업에 우려 목소리가 높다. 독과점적 생태계 정착으로 중소개발사 입지가 사라지고, 중국 게임의 위협은 날로 드세진다.

수입되고 있는 중국 게임은 한국 게임에 비해 손색이 없다. 개발자의 소위 '크런치 모드' 근무 환경에 비판도 거세지고 있다. 개발자 사기를 떨어뜨리는 각종 규제도 그대로다.

이런 난국에 필요한 것이 영웅이다. 이순신 같은 전쟁 영웅까지는 아니더라도, 버핏 같은 기업가적 영웅이 게임업계에 나올 수는 없는 것인가.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jhwi@ca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