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포럼]韓 ICT 中企, 日 국가정보화사업 참여 선결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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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종순 이코퍼레이션닷제이피 대표
<염종순 이코퍼레이션닷제이피 대표>

얼마 전 일본 정보통신기술(ICT) 대기업의 임원인 지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일본 정부의 주요 시설물 관리에 필요한 시스템을 찾고 있는데 일전에 한국 출장길에 소개받은 한국 기업의 솔루션이 제격인 것 같다며 자세한 제품 소개와 레퍼런스 자료를 요청하고 싶다는 이야기였다.

그가 필요하다는 자료를 찾아서 보낸 뒤 연락을 했다. 찾고자 하는 자료인가를 물어 보니 그는 “이 정도의 다양한 기능과 사용의 편리성을 갖춘 제품은 일본에서 찾아보기 어려워요”라며 상당히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 중소·벤처기업의 제품을 일본 ICT 대기업 임원이 사심 없이 높은 평가를 해 줬으니 정말 기쁘고 반가운 이야기였다.

그런데 반전이 있다. “그런데 요즘 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 사이는 좀 어떤 것 같아요”라고 물어 보는 게 아닌가. “글쎄요 내가 그걸 어찌 알겠습니까”라며 되물었다. “왜요? 뭐가 문제가 되나요?” 그러자 그는 “아니 제품은 정말 좋은데 이것들이 한국산이라고 하면 일본 정부 관계자가 어떻게 반응할지 걱정이 돼서요. 일단 일본 정부에 제품 소개는 하겠지만 그런 정치 관계의 고려 때문에 검토해 줄지 잘 모르니 아직까지는 큰 기대 마시고요.”

양국 정부의 외교 관계가 비즈니스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 하고 생각하기 쉽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는 추론을 하게 만드는 대화의 한 토막이다.

일본은 지금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사회 혁신을 이루기 위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각 분야에서 활발한 변신을 꾀하고 있다. 일하는 방식의 혁신이나 셰어링 비즈니스, ICT 분야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서 전방위로 사업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일본 내에서 세계의 ICT 패러다임에 걸맞은 솔루션 개발 기업은 찾아보기 어렵다.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넌다는 이야기처럼 국민성이 본래 리스크를 싫어해서 유능한 인재는 대기업이나 공무원 등 안정된 직업을 택하기 때문에 창업하는 벤처기업가가 드물다. 이 뿐만 아니라 창업해서 훌륭한 제품을 개발한다고 해도 벤처기업이 개발한 제품을 정부나 대기업이 채택해 주는 사례도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국가 정보화 수준이 국가 혁신 수준과 비례한다는 말이 있다. 즉 ICT가 기존 산업과 융합돼 발전하는 ICT 융합 시대에 행정, 의료, 교육, 금융 등 공공 분야를 비롯해서 각종 산업 분야에도 ICT 뒷받침 없이는 변혁을 도출하기가 어렵다는 의미다.

그러나 일본은 ICT 기업 기술(애플리케이션레이어에 해당) 활용 수준과 개발 생산성이 낮아 2000년 이후 모리 요시로 총리가 e재팬 전략을 수립하고 야심만만하게 추진해 온 전자정부 분야만 해도 매년 수십조원이라는 파격의 비용을 투입해서 국가정보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기대한 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지금도 호적등본을 발급 받으려면 본인이 직접 호적지에 가야만 하고, 주민등록 전입 신고를 하려면 먼저 기존 주소지에서 전출 신고를 한 뒤 따로 전입지 관청으로 가서 전입 신고를 해야만 하며, 주민등록 등본을 발급 받으려면 주민등록지 관청에 직접 가야만 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일본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ICT를 기반으로 국가 전 분야에 걸친 혁신 작업에 들어가야 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만한 기술과 개발 엔지니어가 턱없이 부족하고, 시스템통합(SI) 기업의 개발 생산성이나 기술 수준도 그리 높지 않아 사업 추진 안정화에 힘을 들이고 있다.

2000년 이후 수많은 기업이 일본 진출을 시도했고 지금도 도전하고 있는 기업이 많지만 군계일학으로 눈에 띄는 회사가 있다. 일본 국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라 불리는 '라인'을 서비스하는 네이버 자회사 라인이다.

과연 라인은 어떻게 일본에서 성공한 것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를 들라면 SNS 라인을 제공하는 회사가 한국 기업 네이버의 자회사라는 사실을 아는 일본인이 극히 드물다는 점이라 할 수 있다. 얼마 전 일본에서 출판된 '한류경영 라인(LINE)'이라는 책자에서는 라인의 성공 요인을 세 가지 들고 있다. 한국의 요소 기술, 일본의 유능한 엔지니어, 라인이 메이드 인 재팬이라고 믿게 만든 점이다.

우리나라 기업의 각종 솔루션은 일본에서도 충분한 경쟁력을 갖고 있다고 판단되지만 일본 내의 비즈니스를 키우기 위해선 유능한 인재 확보와 제품 경쟁력 제고뿐만 아니라 일본 고객의 한국 제품 이미지 쇄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전술한 것처럼 일본이 추진해야 할 수많은 국가 정보화 사업 분야에서 한국 기업이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은 무척 많다. 이러한 분야에 한국 기업이 널리 진출하기 위해선 한·일 관계 개선과 협력을 위한 한국 정부의 외교 노력 또한 상당히 중요한 시점이 아닌가 한다.

염종순 이코퍼레이션닷제이피 대표 yomutaku@e-corporation.co.j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