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분석-벼랑끝 ICT코리아]ICT코리아가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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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분석-벼랑끝 ICT코리아]ICT코리아가 무너진다

정보통신기술(ICT) 강국이 무너지고 있다.

한국 경제성장의 든든한 버팀목이 됐던 ICT 산업이 기술발전 정체에 따른 혁신 실종으로 세계 시장에서 길을 잃었다. '주식회사 중국'으로 표현되는 중국 정부의 막대한 지원과 이를 받은 기업 노력이 합쳐지면서 ICT 혁신축이 대륙으로 이동하는 시점이다.

이대로는 4차 산업혁명 성공은 물론이고 한국 경제 지속 성장도 장담할 수 없다. 정부와 산업계가 힘을 합치고 지혜를 모아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

◇ICT, 혁신이 사라진 풍경

지난 30여년 한국 ICT 산업은 '혁신' 역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0년대 전전자교환기(TDX) 국산화가 혁신 서막이었다면 1990년대 이후는 자신감 얻은 한국 ICT가 두각을 나타낸 시기였다. 1996년 1월 한국이동통신이 세계 최초 CDMA를 상용화했다. 오늘날 '스마트폰 코리아'가 있게 한 시발점이다.

2005년 11월에는 와이브로를 세계에서 처음 선보였다. 비록 10여년이 흐른 지금 철수를 앞뒀지만 '모바일 강국' 이미지를 세계에 각인했다. 2015년 11월에는 음성LTE(VoLTE)를 세계 최초로 이통 3사가 연동해 'ICT 리더'로서 면모를 과시했다.

하지만 근래 들어 혁신 열기가 차갑게 얼어붙고 있다. 기술 발전 정체가 지속되며 선진국을 따라잡기는커녕 후발주자 추월을 허용하는 처지다. 스마트폰이 대표 사례다. 과거 스마트폰 혁신은 한국 차지였다. 삼성전자는 2011년 스마트폰에 펜을 도입한 '갤럭시노트'를 공개, 패블릿(대형화면+펜) 스마트폰 원조가 됐다.

팬택은 2013년 세계 최초로 스마트폰 지문인식센서를 도입했다. LG전자는 2016년 모듈 방식을 도입했고, 삼성전자는 엣지 디자인, 홍채인식, 듀얼픽셀 이미지센서 등 무수한 혁신을 낳았다. 하지만 최근 스마트폰 혁신은 중국 제조사 독무대다. 후면 트리플 카메라는 화웨이 P20이 차지했고 디스플레이 지문인식은 비보 X21UD가 처음 도입했다. 접이식 듀얼 디스플레이(ZTE), 슬라이드형 전면카메라(오포) 등 참신한 도전은 중국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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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빈 4차 산업혁명

새로운 혁신을 이끌기 위해 4차 산업혁명이라는 화두를 던졌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텅 빈 것일 때가 많다. 인프라 혁신에 치중한 나머지 콘텐츠 대책이 보이지 않는다. 유튜브 이용시간은 월 202억분에 달해 전체 동영상 플랫폼 시장 73%를 차지한다. 모바일 동영상 시장을 내준 것이다.

가상현실(VR)·증강현실(AR)이 5세대(5G) 이동통신 킬러콘텐츠로 주목받지만 정작 이를 구현할 모바일 동영상 국산 플랫폼 점유율은 2~5%에 그친다. 모바일 SNS 역시 페이스북이 56억분으로 월등한 1위다.

4차 산업혁명을 맞을 사회·제도 준비는 전무하다. 0과 1로 이뤄진 디지털 세상과 오프라인이 충돌하고 전통산업과 4차 산업이 뒤엉킨다. 내국인 대상 숙박공유가 불가능하고 원격의료가 금지되는가 하면 거대한 주차장이 없으면 온라인 중고차 거래가 불가능한 게 한국 4차 산업혁명 민낯이다. 2004년 LG전자와 중소기업이 만든 당뇨폰은 휴대폰으로 손쉽게 혈당을 측정할 수 있는 혁신적 제품이었지만 통신도 의료도 아닌 어정쩡한 제품이라는 이유로 허가도 받지 못하고 결국 시장에서 사라졌다. 세계지식재산기구(WIPO) 등이 발표하는 세계혁신지수(2016)에서 한국은 고작 75.4점을 받으며 31위에 머물렀다.

◇디스플레이 등 제조업 위기

ICT 최전선이 혁신을 머뭇거리는 동안 전통 ICT 제조산업은 국가 차원 투자를 등에 업은 중국에 이미 따라잡혔거나 추월당할 위기에 처했다. 디스플레이 산업은 액정표시장치(LCD) 생산능력이 중국에 추월당하는 등 위기가 구체화하고 있다.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TV 시장이 성장하고 있고 아직까지 기술 우위가 있지만 중국 추격이 거세 안심하기 힘든 상황이다. 고급화·다양화가 절실하다. 배터리 산업은 중국 정부의 노골적 견제로 최대 시장에서 힘겨운 경쟁을 펼치고 있다. 이미 규모에서는 밀렸다. 압도적이라던 반도체 산업마저 중국 투자와 기술혁신에 위기 대응이 시급한 상황이다.

김용주 통신방송 전문기자 kyj@etnews.com